이름: 33 2005/7/9(토) | |
민족분단과 극복이라는 통통한 통일시에의 권유 민족분단과 극복이라는 통통한 통일시에의 권유 ― 한탄강 동인시집 '어둠을 가셔내는 냇물' 발문 박관서(시인, 목포작가회의 사무국장) 어느덧 5월이다. 남도의 5월은 광주로부터 시작한다. 하늘은 푸르르고 나뭇잎새들, 잎새들마다 신록은 더욱 빛나건만 우리들은 아직도 광주의 옷자락을 감히 놓지 못한다. 아직도 이 땅에서 광주는 충분히 썩어들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광주의 그 기억이 충분히 더 부글부글 끓어올라 진덤진덤한 거름처럼 우리 사회의 밑자락에 깔릴 때 우리는 환히 웃으며 광주를 풀어놓으리라. 그리하여 남도의 5월은 분주하기 그지없다. 지역문단의 말석에서 이런 일 저런 일 제법 맡아 하는 필자의 경우도 역시 분주함은 마찬가지다. 따라서 진즉 맡아놓은 '한탄강' 동인시집을 여유롭게 읽어볼 겨를도 없이 일정에 쫓겨가며 틈새를 내어 꼼꼼히 읽어보기로 한다. 읽어보았다. 이것저것 짚어가면서 시원고를 거의 다 읽은 지금 무엇보다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수년 전 겨울 순천에서 열린 영호남문학인대회를 마친 다음날 아침 순천만 갈대밭에서 민영선생님과 함께 서로 손을 맞잡고 지역문학의 부흥을 위해 함께 노력하자던 정춘근 시인이 생각난다. 그 이후 북녘의 끝자락인 철원과 남녘의 끝자락인 목포에서 만난 정춘근 시인과 필자는 이제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었고 서로의 문학적 목표를 '끝자락'에서의 활동에 둔지 오래인 것으로 암묵적 동의를 한 터이다. 이번 동인시집 역시 이러한 지역문학운동의 결과물이라 여겨진다. 참으로 그러하다. 이제 21세기의 한국문학은 이런 끝자락들이 제 정신을 차려 우선 제 모습을 갖출 때 새로운 미래가 열릴 것이라 믿어진다. 이래저래 정춘근 형의 그 까무잡잡하고 든든한 모습이 그립기 그지없다. 문학동인 '한탄강'의 첫 번째 동인시집 {어둠을 가셔내는 냇물}은 그 무엇보다도 통일문학, 통일시를 추구하는 시집으로 읽힌다. 물론 우리 남한의 최북단에 위치한 '한탄강'이라는 지명을 배경으로 한 동인 이름에서 벌써 의미하는 바도 있겠지만 그 무엇보다도 시집의 전반적인 흐름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통일지향 의식이었다. 이는 한탄강 동인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맡고 계시는 것으로 보이는 민영 시인님의 축시에서 가장 먼저 드러난다. 해마다 어김없이 오는 봄도 저절로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저 머나먼 남쪽 하늘에서 초록제비 등에 실려 오는 봄. 그 봄을 기쁘게 맞아들일 간절한 소망과 기도가 우리의 가슴 속에 없다면 봄은 오던 길을 멈추고 되돌아설지도 모른다. 봄은 언제나 뼈시린 설한풍과 언 땅을 비집고 돋아나는 봄맞이꽃과 함께 찾아온다. 청모시빛 하늘에 비단구름 날아가고 아지랭이 피는 들에 종다리 지저귀며 날아오를 때 나물캐는 여인들의 뺨에도 복사꽃 그림자가 어린다. 이제 우리 모두 손에 손 잡고 봄 오는 길목으로 달려가서 손나팔 불 때가 돌아왔다. 얼음장 밑에 냇물이 흐르듯 겨우내 닫혔던 마음에 꽃불을 켜고 봄이어 오라, 봄이어 어서 오라!고 외칠 때가 돌아왔다, 힘차게. ― 민영 시 [봄맞이꽃 필 때] 전문 참으로 그러하다.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봄도/ 저절로 찾아오는 것은 아니'며 '봄은 언제나 뼈시린 설한풍과/ 언 땅을 비집고 돋아나는' 것이다. 따라서 동인이름으로 차용된 '한탄강'은 남북분단이라는 공간적 특수성을 나타냄과 동시에 이들 동인들의 시 역시도 실제적인 분단상황의 체험을 온전히 담아내고 있음을 전조하고 있음에 다름 아닐 것이다. 야산 모롱이 등지고 덩그러니 하나 벽 체만 남은 인공치하 적 노동 당사 해방된 다음 다음해이던가 인민의 피와 땀으로 세워지고 인민의 이름으로 붉은 깃발 날리며 서슬 퍼런 사상의 날 갈던 곳 그러나 지금은 육이오 전란의 상흔만 안은 채 무심한 잡초만 자라고 있다 이 곳을 찾는 수 천 수만의 사람들아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가는가 흉한 총탄 자국 만신창이 된 너의 형체는 얼빠진 이념과 사상에 물들어 광분하던 격동의 반세기 민족의 수난사 피로 물들인 겨레의 자화상 무너져 내린 지붕 싸늘한 별무리 쏟아져 내리는 밤이면 그때의 참상 끔찍스러워 묻어 버린 지하실 속 반동이란 죄명으로 죽어간 숱한 목숨 그 원혼들의 달랠 길 없는 피울음 소리 밤 바람소리에 섞이고 그들을 죽인 자 또한 뉘 손에 죽었거나 살았어도 제 고향 찾지 못하는 그늘진 역사의 뒤안길 피맺힌 한의 매듭을 우리 어떻게 슬기로운 지혜로 풀어야 할까 유월 하늘 걷히지 않는 먹구름만 마음을 무겁게 한다 언젠가 통일이 되고 폐허의 철원 시가지 복구되는 그 날이 와도 너는 헐리지 말고 그 모습 그대로 역사의 장으로 남아야 한다 ― 이기봉 시 [노동당사 바라보며] 전문 뼈만 앙상히 남은 철원의 [노동당사] 사진을 본 적이 있긴 하지만, 이처럼 직접 시적 제재로 채용되어 이를 감상하는 일은 먼저 일면의 당혹감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사실이다. 지난하게 인식되어 있는 레드컴플렉스의 작동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노동당사 바라보며] 라는 시를 보면서 우선 드는 판단의 작동정지라니! 이는 그만큼 아직도 우리의 민족분단상황을 대하기가 쉽지 않음을 나타내주면서 동시에 문학적 형상화 작업의 지난함을 나타내주는 것이리라. 더하여 이를 실제 체험에서 우러내는 일의 어려움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러한 실제 체험공간에서 우러난 시편들은 이외에도 [동두천](김형효), [곰보돌][금강초롱][낙타고지][라면 여덟 상자](정춘근), [명성산을 바라보며](이선미), [원산 앞 바다 생태](조광태) 등등에서 많이 나타난다. 따라서 이러한 글들을 중심으로 이들의 문학적 형상화 작업이 지닌 의미를 과문하게나마 짚어보고자 한다. 먼저 앞에서 살펴본 이기봉 시인의 시 [노동당사 바라보며]에서 '육이오 전란의 상흔만 안은 채 무심한 잡초만 자라'고 있는 우리 '겨레의 자화상'을 본다. 그러면서 이처럼 '그늘진 역사의 뒤안길/ 피맺힌 한의 매듭을' 슬기롭게 풀기 위해서는 우선 있는 그대로의 역사로서 '언젠가 통일이 되고/ 폐허의 철원 시가지 복구되는 그 날이 와도/ 너는 헐리지 말고 그 모습 그대로/ 역사의 장으로 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봄으로써 교훈을 얻자는 얘기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처럼 역사에 대한 순전한 객관적인 현실대입이 꼭 옳은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거론키로 한다. 이번 동인시집에서 김형효 시인의 시 [후일담]은 강력한 통일지향의 시로 읽힌다. 낫 갈고 풀 베던 그 시절이래 가고 디금은 협동농장에 기억만 생생하제이요. 동무래 함흥산 강냉이래 찐거 먹으먼서 아우지 삽질 해보라우 기거래 죽을 맛이었더랬지. 아따 시방 우덜 클때게 콩볶아 먹던 생각험시러 옥수수 맛 좀 보께라우 이것이라우 기맥히게 맛있소 잉. 동무는 질기게 먹었다고 그랑께 나코는 목포 선창에서 뻘낙지나 먹읍시다. 그려 우덜도 그 염병할 코쟁이 양코뱅이들 땜세 애 먹었소 잉. 밤은 깊어가고 어두움에 깊이 빠져드는 반도의 산에 들에 풀 바람에 억새풀도 사그락 거리며 군불타는 아궁이 헤집는 농투산이 아리랑 아리랑 어깨를 건다. 동서로 남북으로 산과 산, 강과 강, 바람처럼 흔들흔들 흔들리고 파도처럼 우렁차게 노래 부르며 옛 동산의 금잔디 위에 누워 흰 하늘을 본다. ― 김형효의 시 [후일담] 전문 시의 시적 정황을 살펴보건대, 분단의 이 나라에 통일이 되고도 한참이 지난 훗날의 어느 날 북한의 농부와 남한의 농부가 만나 현재의 분단상황을 후일담으로 나눈 다는 설정이다. 따라서 이는 자칫 작위적으로 보일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쪽 사투리와 남쪽 사투리의 과감한 채용으로 이를 어느 정도 극복하고 있으며, 이는 바로 현재적 사실성을 넘어서 시적 진실성을 획득한 것으로 읽힌다. 이 시에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작금의 남한에서 쓰여지는 대부분의 통일지향 시가 고향상실이라든가 읽어버린 혈육의 정 같은 것들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감안할 때, 이처럼 대담한 시적 공간의 이동이라든가, 구어투의 채용, 또는 통일에 대한 낙관적 인식의 직접적인 묘사 같은 것들은 아무리 강조해도 괜찮은 미덕이 아닌가 생각된다. 세상 모든 일들이 그렇듯이, 이제 반세기가 지난 우리들의 통일문예도 당위성이나 절박성도 소중한 민족통일의 한 동인임에는 분명하지만 또한 이제는 즐겁고 유쾌한 미적 쾌감의 차원에서도 모색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차원과는 좀 다른, 진지성과 객관성을 겸비하면서도 우리 전통적인 민요조의 운율을 채용한 정춘근 시인의 통일 지향 시편들이 돋보인다. 높은 곳에 서면 하늘에 닿을까 치마 자락으로 하늘을 가리고 백발 할머니 앉아 우는 월정리 전망대 풀먹인 무명 손수건이 다 젖어도 눈물샘은 마르지 않아 쪽 머리 풀고 우는 비녀 안에 은장도 푸른 이끼가 꼈네 거울 반쪽 나눈 정분 녹슨 철조망 앞에서 지팡이 짚고 평생 기다렸으니 그 날처럼 맑은 하늘에서는 옷고름 물고 기다리겠네 ― 정춘근 시 [은장도] 전문 남북분단의 최접점인 [월정리 전망대]를 '쪽머리 풀고 우는/ 비녀 안에 은장도'로 봄과 동시에 은장도가 지닌 지조와 정절의 순정한 마음으로 '녹슨 철조망 앞에서/ 녹슨 지팡이 짚고/ 평생 기다렸'으며 다시 '옷고름 물고 기다리겠'다는 시인의 의지가 든든하기 그지없다. 이처럼 현실적 공간으로서 강원도라는 남북분단의 현장에서 직접적인 체험을 근간으로 이뤄지는 정춘근 시인의 시편들은 재작년에 시집 {지뢰꽃}(문화발전소 간)으로 엮어진 바 있거니와, 이번 시집에 수록된 시 '낙타고지'와 '라면 여덟 상자' 같은 시편들에서는 이러한 조국 분단의 극복의지가 더욱 깊어짐과 동시에 그 문학적 외연이 확대되어 감을 확인할 수 있음은 기쁜 일이기 그지없다. 경로당에 모여 기억 속에 똬리 틀은 고향자랑을 국수 타래처럼 풀어내던 노인들 점심으로 라면을 끓였는데, 만물 박사 평양 김씨 라면 한 개 풀면 오십 미터라 한 것뿐인데 셈이 빠른 황해도 최씨 노인 휴전선 이십 리는 라면 여덟 상자라 속없이 이야기 한 것뿐인데 오늘 라면은 매웠나 보네요 노인들 눈자위가 붉은 것을 보면 라면을 그대로 남긴 것을 보면 경로당 구석에서는 라면 끓는 검은 솥만 덜컹덜컹 기차 소리를 냅니다 ― 정춘근 시 [라면 여덟 상자] 전문 이처럼 그 누구도 절박하고 긴급해지기 마련인 민족분단의 문제를 풍자와 해학이라는 문학적 의지로 거뜬히 담아내는 시인의 모습이 미덥다. 바로 직접적인 현실보다 더 직접적인, 즉 더 큰 현실에서의 진실성을 담아내는 문학적 승화의 모습인 것이다. 본 발문의 서두에서 끝자락과 끝자락의 만남, 그러니까 지역문학의 발흥과 연대가 바로 21세기 한국문학의 나아갈 길이라고 짚었던 바, 정춘근 시인의 이 시와 남도의 농민시인 고재종 시인의 시 [파안]을 찾아 비교해 보라. 어찌 그 누가 기획하지 않았는데도 이처럼 문학적 포즈의 합일이 이뤄지는 것인가. 이런 점에서 북녘 실향민인 아버지의 체험을 보듬어 지속적으로 분단 통일시를 써온 것으로 보이는 조광태 시인의 시적 작업도 소중한 것으로 읽힌다. 특히 시 [원산 앞바다 생태]는 절창으로 읽힌다. 거친 새벽 바다에 얼굴 그을린 함경도 어부는 그물 치는 팔뚝으로 사투리로 손바닥 굳어진 채 사는 줄만 알고 날마다 통통배로 잡은 원산 앞 바다 생태를 그날그날 쥐어지는 몇 푼의 가치로 경원선 새벽 열차에 실어 보낼 수 있다면 신고산 넘어온 원산 앞 바다 생태는 철원이다 서울이다 내륙으로 퍼져 나아가 시장 생선 비린내 물씬 풍기는 좌판에서 닷새 장 찾아다니는 장꾼들 난전에서 흥정하는 아낙들 장바구니에 팔려 가면 원산 앞 바다 깊고 넓은 향기로 찌개 냄비에서 남쪽 물을 만나 얼큰하게 어우러지며 끓어 넘칠 수 있는데 ― 조광태 시 [원산 앞바다 생태] '원산 앞바다에서 잡은 생태'가 '경원선 새벽 열차'에 실려 '철원이다 서울이다 내륙으로 퍼져 나아'간다는 시적 인식의 획득이야말로 소중하게 획득한 통일시의 한 전형이 아니고 무엇이랴. 더구나 '원산 앞 바다 깊고 넓은 향기로/ 찌개 냄비에서 남쪽물을 만나/ 얼큰하게 어우러지며/ 끓어 넘칠 수 있'다는 대목에선 반세기 넘도록 우리들 가슴 깊이 쌓인 민족분단의 독이 해독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시형식에 있어 한 두 군데 과도한 진술조의 표현들만 좀 걷어낸다면 참다운 통일시의 한 모습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사실 민족분단과 통일이라는 우리 사회의 당면한 민족적 화두는 웬만한 문학적 완숙과 실제의 체험이 없이는 참 어려운 일이다. 또한 사이버공간을 배경으로 자유로이 결성된 '한탄강' 동인들의 결과물이라기보다는, 출발의 신호탄으로 보이는 이번 동인시집 {어둠을 가셔내는 냇물}의 시편들은 따라서 작품의 형식적 완성도나 동인들의 의식에 있어 큰 편차를 보이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예를 들어, 본 글의 서두에서 민족분단의 실제체험이 과감히 채용된 것으로 읽은 이기봉 시인의 시 [노동당사 바라보며] 같은 경우도 시적 표현 군데군데에서 시인의 의식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얼빠진 이념과 사상에 물들어/ 광분하던 격동의 반세기' 라든가 '반동이란 죄명으로 죽어간 숱한 목숨' 같은 상투적 표현은 물론이며, '그들을 죽인 자 또한 뉘 손에 죽었거나/ 살았어도 제 고향 찾지 못하는' 같은 표현에서 드러나는 역사와 현실에 대한 제삼자적 인식태도는 너무 안이한 전시대적 발상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제 우리의 역사는 분단이라는 편향된 양극단에서의 시각이나 또는 여기에 무조건 거리를 두고 바라보려는 안이한 태도에서 벗어나, 좀 더 적극적인 입장에서의 역사해석과 현실적인 수용이 필요한 시점이라 여겨진다. 특히 '노동당사'에서 추출되는 사회적 의미는 IMF와 신자유주의라는 우리의 현실 상황에서 여전히 유효하기 그지없으며, 실제로 프랑스나 영국 같은 곳에서는 이러한 '노동당사'가 실제의 '정부청사'로 쓰이고 있지 않은가. 이는 바로, 역사를 사장된 기록물로서만 볼 것이 아니라 현실의 수용체로서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왜곡된 현실을 바로잡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말에 다름아니다. 더구나 민족분단 상황을 직접적으로 코 앞에 둔 입장에서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바로 이처럼 온전한 현실인식을 문학적 인식의 기반으로 삼을 때, 언뜻 듣기 쉬운 문학적 소재주의라는 오해 같은 것들이 흔적없이 밀려나고 참다운 통일문학의 발현으로 자리매김될 것이다. 이처럼 참다운 통일문학을 추구하는 입장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을 이러한 의식적 측면에서의 충전을 바라는 마음은 비교적 이쁜(?) 시를 쓰는 이선미 시인에로도 이어진다. 여기에서 이쁜 시라함은 이선미 시인의 거의 모든 시들이 2음보 내지 3음보 이내의 짧은 시행으로 밀고 당기는 시적 형식의 완숙한 솜씨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깔끔하고 매끄러운 시형식의 추구만으로 좋은 시가 되지 않으리라는 건 시인이 먼저 알고 있을 터, 시인의 시편들 중에서 그래도 가장 '한탄강'적인, 민족의식이 담긴 시 '명성산을 바라보며'를 보자. 아이 손을 잡고나선 포충사 멀리 바라보이는 철원 땅 한 모퉁이 섬이 되어 눈꽃 피운 산 아이와 나의 눈높이 따라 시간을 달리하는 산 손끝으로 남과 북을 어우르며 돌아누워 우는 산 나 문득 명성산의 한 그루 나무이고 싶다 ― 이선미 시 [鳴聲山을 바라보며] 전문 역시 깔끔하고 이쁜 시이면서 명성산이 갖고 있는 분단과 합일의 의미를 잘 잡아내어 우리 민족의 분단상황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처럼 이쁜 형식에 잘 끄집어낸 시적 제재 이후에 발휘되어야할 시적 상상력이 겨우 '나 문득/ 명성산의 한 그루/ 나무이고 싶다' 라니, 어쩌면 이제부터 바로 시인의 시적 상상력이 날개를 달고 한 편의 시속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이처럼 너무 평범한 기구의 형태로 한 편의 시가 마무리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바로 역사와 현실에 대한 치열한 인식과 의식의 부재를 나타내는 것이라 하면 너무 과도한 지적일까. 이러한 점은 사물에 대한 깊은 사유로써 만만찮은 시적 기교를 보여주면서도 정작 시 속에 담겨야할 시인의 개별적 상상력의 주입부분에서는 왠지모르게 밀려나고 마는 이승호 시인의 시편들을 비롯한 많은 동인들의 시에서 드러나는 맹점으로 느껴졌다. 문경실 시인의 시에는 추상은 있고, 사상은 드러나지 않는다. 시작을 위해 동적 바탕, 즉 시작을 유발하는 동기를 찾는 데 열중할 필요성이 있다는 생각이다. 또한 정세용 시인의 시에서는 많은 이야기가 나올 듯 말 듯 머뭇거리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렇다. 흔히 바둑에서 훈수하는 사람은 원래 제 급수보다 한 두 급 정도는 높아지는 법이러니 그러한 점에서 용서하시길! 그리하여 '한탄강'이라는 그 지명적 공간상에서 실제로 남북분단 상황을 접하는 이들의 상상력만이 지닐 수 있는 특성을 살려냈으면 한다. 더 좀 질기고, 깊고, 끈끈한 뿌리형태의 시적 사유를 권유하는 것이다. 흔히 한국의 주류시들이 걷는 미세하고 개별적이면서 사회적으로 전혀 무책임한 그런 물화된 시적 상상력이 아니라, 민족분단과 극복이라는 사회적 책무 만만하기 그지없는 그런 통통한 통일시에의 권유말이다. 민족분단의 현장에서 발원한 시동인 '한탄강'의 푸른 물결이 바로 삼천리 통일강산으로 뒤덮여 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러한 지향으로 님들이 초대한 통일시와 함께 과문한 글을 마치기로 하자. 종내에 우리들이 가 닿아야할 곳, 끝끝내 가 닿아야할 통일의 그 자리에서 나올 노래, 그 맨살의, 그 뜨거운, 있는 그대로의 노래인 김준태 시인의 초대시 '평양에서'를 읽으며 과문한 글을 마치자. 거듭 '한탄강' 동인의 무궁한 발전을 빈다. 2001년 8월15일 밤 12시 평양이었다 나는 모란봉 을밀대를 뛰어넘어 갔다 대동강을 건너간 나는 밤새도록 고구려 여자와 죽자살자 잠을 설쳤다 난생 처음으로, 남쪽 여편네 모르게 고구려 처녀와 질기고 질긴 행방불명을 즐겼다 다음날 새벽 4시― 그녀는 다시 <壁畵무덤> 속으로 들어가고 나는 낮도깨비에 걸린 사내처럼 헛소리를 내질렀다 으으으! 그러나 그런 나를 조금이라도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김준태 시 [평양에서] 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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