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말
2005/7/9(토)
[쌀 재협상 논란] 자찬하는 정부, 주저앉은 농민  

 

자찬하는 정부, 주저앉은 농민
이슈_쌀 재 협상 논란

 

김선영 기자 bono1523@hotmail.com

 

   
정부의 쌀 협상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겨울. 농민들이 서울로 모여들어 제사를 지냈다. 여름내 피로, 땀으로 길러낸 쌀을 제사 지냈다. 사과와 배를 제사 지냈다. 이들 앞에 나타난 ‘국민의’ 경찰들은 시위 물건이라며 그들의 사과와 배를 빼앗아갔다. 농민들은 힘없이 제수용품들을 빼앗겼다.
정부 관료들은 그들을 향해 말했다.
“쌀 관세화 유예를 20년씩 연장한 나라가 흔한가? 대단한 일이다.”
주저앉은 농민들의 눈엔 어느새 눈물이 가득 고였다.

김선영 기자 bono1523@hotmail.com

4월
12일, 정부는 지난 해 말까지 추진했던 ‘쌀 관세화 관련 협상’(이하 쌀 협상) 결과를 발표했다. 당초 전문가들은 관세화를 유예할 때 쌀의 최소시장접근물량(관세화 유예 시 의무적으로 한국 시장에 들여와야 하는 쌀의 최소 물량, MMA)을 국내 쌀 소비량의 8%까지로 만 맞춘다면 관세화 보다 유예가 더 유리할 것이라고 진단했었다. 그래서인지 정부의 쌀 협상 결과는 ‘관세화 10년 유예, 최소시장접근 물량 7.96%’에 맞춰 있었다. 전문가들이 언급했던 8%에 가까스로 수준을 맞춘 결과였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정부가 WTO 사무국에 통보했다고 발표한 이행계획서의 국문 가역본과 실제 영문 합의서 사이에 현격한 차이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심지어 협상 대사가 직접 나서서 “쌀 이외의 협상은 일절 않겠다.”고 호언장담했던 국민과의 약속과는 다르게 “사과와 배 등에 대한 신속한 수입 평가에 협조하겠다.”는 부가합의도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농민들은 털썩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10년 유예는 대단한 일?

정부는 쌀 협상 결과를 발표하면서 “2005년부터 2014년까지 최소시장접근물량(의무도입물량과 같다.) 7.96%로 관세화 유예를 10년 간 연장했다. 이전의 10년 관세화 유예까지 총 20년을 유예한 나라는 흔치 않다.”며 “이는 대단한 일”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농민들은 이에 분개했다.
“억지로 8% 이하로 끼워 맞춘 결과다. 이집트, 인도와의 추가적인 구매 합의를 포함하면 의무도입물량이 8.18%가 되고, 정부가 의무도입물량의 기준년도로 잡은 1988~1990년 쌀 소비량을 최근 1999~2000년으로 바꾸면 14%까지 개방하는 꼴이 된다.”

전국농민회 총연맹의 박웅두 정책위원장은 이렇게 설명하면서 “이번 쌀 협상은 실패했다.”고 단언했다. 그의 말대로 농민들은 이번 협상을 실패한 협상으로 보면서 그 이유들로 여러 가지를 들었다.
“의무도입물량의 퍼센트는 차치해두자. 지금도 중국산 찐쌀이 20Kg에 3만 원 선에서 팔리고 있고 가공용 쌀의 불법유통이 계속되고 있는데 식용 쌀 수입의 30%를 국내 판매용으로 허용하는 것은 국내 쌀 생산 농가에 막대한 피해를 가져올 것이다. 관세화 유예가 끝난 2014년 이후 관세화를 통한 완전개방을 ‘약속’한 것도 식량자급자족에 대한 의지가 없는 것 아닌가?”

독이 오른 설명은 이 부분에서 극에 달했다.
“더구나 작년까지 정부는 쌀 이외의 품목은 절대 쌀 협상과 연계해서 협상할 수 없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정부는 국민에게 그렇게 약속함과 동시에, 다른 쪽에서는 쌀 이외의 품목에 대해서도 협상을 진행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하지 않나? 한중 마늘 이면합의로 정부의 농업정책의 한계를 뼈저리게 실감한 농민들이기에 이번에 논란이 되고 있는 쌀 협상 이면 합의를 보고 더욱 분노를 느끼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정부는 “2014년까지 협상을 끝내지 못하면 ‘자동관세화’로 간다.”(이 유권 해석은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면서 신중한 협상, 농민들의 의견을 철저히 수렴한 협상을 요구하는 농민과 국민들을 ‘협박’했다. 그리고는 이번 협상에서 한국에 불리한 점들이 논란이 되자 “협상시한에 쫓겨 상대국들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고 다시 한번 ‘협상시한’을 무기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 협상 시한에 대해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은 이렇게 문제제기한다.
“이해당사국에 2004년까지 협상을 ‘타결할’ 법적 의무를 부여한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것이 해당 일까지 협상 결과가 나오지 않을 시 자동적으로 협상이 중단되고 관세화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WTO는 DDA 세부원칙협상은 2003년 3월 31일까지 마무리 하도록 정해두었다. 하지만 알다시피 지금까지도 세부원칙은 타결되지 않고 있다.”

강 의원은 이에 대해 “객관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정도로는 해석을 해야 할 일인데, 자국에 이익이 되도록 유권 해석을 하지는 못할망정 자국의 발등을 찍는 해석을 내리는 일이 어디 있느냐?”고 덧붙였다.

이러한 논란들 때문에 ‘쌀 관세화 유예협상의 실태규명을 위한 특별위원회’가 조성돼 5월 12일부터 35일간의 쌀 협상 국정조사에 들어갔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정부가 쌀 관세화 유예 10년 연장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중간점검을 수용했다는 새로운 내용 등이 밝혀짐에 따라 농민들의 배신감은 전 국민들에게로 퍼져가고 있다. 그런데도 농림부 관계자들은 같은 말을 반복한다. “(어떤 부가 합의가 있었건)쌀 관세화 10년은 대단한 일이었다.”라고.

“정말 농민들에게 이러면 안 된다”

“쌀 이외의 품목은 협상 대상이 아니라고 했던 것은 우리 정부가 그렇게 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이었다. 협상 테이블에 가보니 그럴 수 없었던 것이다. 노력을 했는데 안 된 것을 어쩌란 말이냐?”

이재길 도하개발 아젠다 협상대사는 정부의 ‘거짓말’에 대해 이렇게 해명했다. 국민에게 약속했던 말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으니 된 것 아니냐?’는 것.

진행되고 있는 협상에 대해서 뿐 아니라 심지어 지금 마무리 된 협상에 대해서도 ‘국익을 위해서’ 자세한 협상 내용 공개를 피하는 정부였다. 협상 대표단 이외에는 그 누구도 협상 상황을 알지 못하고, 그저 정부에서 선심 쓰듯 던져주는 말 몇 마디에 의존해 협상에 대해 알 수밖에 없는 국민이었다. 그렇기에 국민들은, 절박한 농민들은 그들에게 철썩 같이 약속했던 정부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인데, 이제와 드러나는 결과가 정부에서 약속했던 것과는 판이하니 놀라고 또 분한 것이다.
“정부는 국민에게 약속한 것 따로, 실제 협상한 것 따로 이면서 ‘노력했는데 어쩌란 것이냐’라고? 그렇다면 정부를 믿은 농민들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정부의 농업 정책 배신으로 피해를 입게 되는 농민들은 어디에 호소를 하나? 이게 우리의 대표인 정부 관료들이 할 소리인가?”

이재길 협상 대사의 발언을 들은 한 농민 단체 관계자는 치를 떨었다. “책임지지도 못할 말로 국민을 희롱하는 정부는 국민의 대리자로 자격이 없는 것”이라고 소리도 쳤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한중 마늘 협상 때도 우리가 모르는 계약으로 우리 농민들을 농락했다. 번번이 이런 식이다. 힘이 없는 농민들이라고 해서 이렇게 아무렇게나 대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정말 우리에게 이러면 안 된다.”

“어쩔 수 없이 국민과의 약속을 져 버린 것이다”라고 변명하는 정부 관료들에게 “그렇다면 이런 정부가 국민에게 하는 말을 국민은 계속해서 믿어야만 하고 어떤 배신을 당해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인가?”라고 되묻는 농민들. 휴대폰 단말기 등의 고 부가가치 산업의 수출을 위해 한국의 마늘 농가들을 등졌던 것처럼 언제나 다른 이익을 위해 농민들의 희생을 강요했던 정부에 “농민의 편에서 농민들을 보호해 주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있기는 한 것이냐?”고 외치는 농민들. 아무리 이들이 목청이 터지게 억울하고 분함을 호소해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고, 오히려 울고 있는 이들을 향해 가혹한 발길질을 더하는 이 상황에서 농민들을 보듬어 줄 수 있는 힘이 과연 한국에는 존재하는지 되묻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철저히 거세된 농민의 힘

“5.16 쿠데타 이후 농협법이 새로 만들어졌다. 새마을 운동으로 농민들의 배고픔은 일시적으로 해소되었던 게 맞지만, 당시 중화학 공업을 위시로 한 성장 위주의 경제 정책은 농민 권력을 창출할 수 있는 농민 조직을 거세해 버린 결과를 낳았다.”
농업통상법의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한국에서 농민의 힘이 제대로 응집되지 못한 역사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며 안타까워했다. 한국의 생명줄인 농업이 고부가가치 창출의 ‘대갗로 전락해 버린 현 상황은 농민 조직이 와해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떠올려보자. 농민들의 목숨을 쥐고 흔드는 농업 협상 때마다 농민을 대표해 농민의 이익을 정부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협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농민 조직이 있었던가?
“농민들의 힘이 조직적으로 응집돼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대표적인 조직은 바로 농협이다. 일본이나 프랑스의 예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농협은 농민의 이익을 대변하기 보다는 국가에서 주는 보조금 등에 얽매여 반농민적인 정부의 농업 정책을 농민들에게 전달하고 홍보하는 역할 밖에 하지 못한다. 이게 한국 농민의 대표 조직이라는 농협의 실체다.”

최근 농민들 스스로 해산을 결정한 농협이 늘고 있고, 농협 개혁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송 변호사의 이러한 이야기가 예사롭지 않다.
“일본이 쌀 시장을 개방하던 시점, 농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쌀 시장 개방 준비를 철저히 하면서 시장 개방을 성공적으로 이끈 단체가 농협이었다. 신용사업이 주요 업무로 전락해버린 한국의 농협과는 다르게 조합원인 농민들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농민들이 스스로 조합장을 선출해 조합을 만들고 농산물 품목별 전국 연맹을 만들고 그 연맹들의 상위에 전국 규모의 컨페더레이션이라는 조직을 만든 것이다. 컨페더레이션의 직원은 50~100명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농협 전체의 이익을 위한 로비 활동이나 농민들을 상대로 한 법 개정 및 홍보에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농협은 일본이나 프랑스의 ‘농민에 의한, 농민을 위한, 농민의 농협’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고한다. 계속되는 한국 농협의 개혁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유신체제였던 1961년, 농업자금의 원활한 공급을 이유로 농업은행을 통합하면서 농협은 신용사업을 겸하게 됐다. 하지만 경제발전과 함께 수익성이 높은 신용사업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농정활동이라는 본연의 임무가 약화됐다. 중앙회 인력의 77%가 신용사업 부문에 종사하고 있고, 농작물 출하, 판매 등의 사업은 선심성 지도 사업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지역조합과 중앙회는 따로 행동하고 있고 중앙회는 정부의 개방 농업정책을 수행하는 대행기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전국농민회에서 주장하는 한국 농협의 현실이다. 박정희 정권에서 가장 먼저 실시된 농협법 개정이 한국 농민 조직의 거세 작업이었다는 송기호 변호사의 주장과 정확히 맞닿고 있다.

누가 농민의 편에 설 것인가?

60년대부터 잘못되어 왔다는 농민 정책. 때문에 현재 한국의 농업 협상의 테이블엔 진정한 농민 대표가 없다고 한다.
“일단 현재의 농협부터 바꿔나가야 한다. 농업에 대한 국민 인식이 높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해서 농민들의 입장을 무시하는 개방 정책으로 일관하는 정부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조직으로 농협을 개혁해야 하는 것이다.”

전농의 민동욱 정책국장은 이렇게 농협 개혁을 바라는 농민들의 목소리를 전하면서 “기술 혁신을 통해 상품화된 농축산물을 생산케 하고 판로를 개척해 이를 제값에 판매하는 역할, 정부, 소비자에게 농업, 농촌, 농민들의 현실을 제대로 알리고 현실에 맞는 정책을 유도하는 역할 등의 농협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농협을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40년 넘게 철저히 억눌려 온 농민들의 목소리를 이제라도 세상에 내지르도록 함으로써, 이번 쌀 협상과 같은 농민 없는 농업 정책 추진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농민들이 반대하면 협상 대상국에 누가 된다는 식의 설득은 정부의 몫이 아니다. 오히려 미국이 자주 쓰는 방식으로, 협상 대상국에 ‘국내의 반발이 너무 심해 이 부분은 양보 못한다.’고 국내의 반대여론을 적절히 이용하는 ‘쉘링효과’를 고려해 보는 것이 정부의 역할 아닐까? 하지만 우리 정부는 누구를 먼저 생각하고 있는지, 과연 누구의 편인지 의문이 든다.”

쌀 협상 토론회를 지켜보던 어느 경제학자의 잊혀지지 않는 푸념이다.
과연 이 땅에 농민의 대표자는 존재하는 것일까? 진정 40년 동안 철저하게 씨가 마른 것일까? 그렇다면 앞으로도 농민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게 농민들만의 문제일까? 농민들의 몸부림을 우리는 방관만 해도 되는 것일까?

 

월간말 2005년 2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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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대한 네티즌 의견

Greatdobal
[2005-06-15]

적어도 길을 제시해 주길
농민단체가 삼성같은 힘을 국내건 국외건 가질 수 있는가.
그저 하늘만 바라보면서 살 뿐이다.
전후부터 정책이 쌀 증산이었고 지금은 바꿔야할 때라면 정부가 주도해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농민
[2005-06-16]

아프다
저희 아버지도 농사를 지으십니다.
그래서인지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어쩌면 좋을 까요
도시 사람들이 이 기사를 제대로 읽어주기나 할런지 참
이런 농업기사에 관심을 가져주고 우리 농산물을 사랑해야 할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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