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제종길 의원님 글
2005/6/29(수)
Re..단편소설 "만남'  

제가 쓴 단편소설입니다.

만 남

한민영은 연구소에서 집으로 돌아와 방수용 잠바와 청바지로 옷을 갈아입고 간단한 여행 채비를 하여 집을 나섰다. 내일 이른 아침에 목포항을 떠나는 배를 타야했다.

집으로 올 때부터 쏟아 붓던 비가 계속인데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소낙비 속을 혼자 드라이브하는 기분도 나쁘진 않지 생각하고 차에 올라탔다.

두 달 전에 일이다. 한 세미나에서 길재인을 만났다. 그는 환경학자지만 사회문제에 관한 정연한 논리로 강연을 잘하기로 이름이 나있었다.

민영이 그를 직접 대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통일 이후의 환경문제”를 다루는 이 세미나에서도 그는 발제를 맡아 관중들의 시선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재인은 내내 밝게 웃고 있었지만, 민영은 그가 내면을 완벽하게 숨기지는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속 깊이 숨겨진 쓸쓸함이 그를 처음 보는 민영에게까지 전달되었기 때문이었다.

세미나가 끝나고 일상적으로 이어지는 리셉션에서 재인은 사회자와 토론자 몇 사람과 형식적인 인사만 마치고 바로 민영에게 다가왔다. 마치 이곳에 온 것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저는 길재인이라고 합니다.”
“예.. 만나서 정말 반갑습니다. 저는 한민영입니다. 자연정보연구소를 운영합니다.”

민영은 평소에 짝사랑하던 여인으로부터 갑자기 프러포즈를 받을 것처럼 설레고 당황하여 자신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가고 있는지를 인지하지 못하고 조건반사적으로 상대방의 말에 대응하고 있었다.
“알고 있습니다. 한 번 뵙고 싶었습니다.”
“저.. 저도 그랬습니다.”
“언제 신안군에 있는 섬 구경을 함께 가지 않겠습니까?”
“네 그러지요.”
얼떨결에 대답까지 하고 명함을 서로 주고받았다.

“그럼 제가 빠른 시일 내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오는 가을이 다가기 전에요.”
그것이 민영과 재인의 첫 대면의 전부였다. 그리고 3일 전에 재인은 전화를 걸어 다물도에 가려고 하는데 가지 않게냐고 물었다. 정중하게 의사를 타진한 것이지만 민영에게는 “다른 일 다 재껴 두고 오시오”하는 명령어처럼 들렸다.

서초구 원지동에서 과천을 지난 외곽순환도로를 거쳐 서해안고속도로로 진입하여 안산을 막 지나는데 그만하던 빗줄기가 다 거세지기 시작하였다. 밤 12시 이전에 목포에 도착하려면 꽤 속도를 내야 하는데 워낙 세차게 내리니 막 밟을 수도 없었다.

억센 빗줄기는 아주 짙은 안개처럼 헤더라이트의 불빛을 다 흡수해버린 것 같았다. 세상은 이미 진한 회색빛 톤으로 변하였다. 빗살은 더 거세어져 윈도 부러쉬로는 역부족이었고, 빗물은 차창을 거꾸로 올라 타기 시작하였다. 하이빔이 최소한의 시계만을 만들어 낼 뿐이었다. 가끔 마주 지나치는 차가 내는 희미한 노란빛이 거의 유일한 유채색이었다.

민영은 약간의 무료함과 두려움을 해결하고자가 CD드라이버를 틀었다. 20여 년 전 한 때 큰 인기를 모았던 부부 포크가수의 것이 들어 있었다. 구수한 목소리와 맑고 낭랑한 목소리가 서로 교차되기도 하고 함께 들리기도 하였지만 그 소리만 듣고 있을 뿐 가사내용에는 신경이 가지 않았다. 서산을 지난지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해미가 나타났다.

비는 여전하고 진회색배경에 조금 진한 실루엣이 겹쳐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산들이었다. 꽤 높은 장막들이 차를 에워싸 안았다가 감자기 물러서곤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홍성 인터체인지가 2킬로미터 전방이라는 교통 안내판이 지나갔다. 홍성은 저항의 고장이라는데 저 산들의 정기를 받은 탓일까? 하고 민영을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때 강한 비트가 섞인 한 노래가 파도소리와 함께 귀에 울려 들어왔다.

“텅 빈 대합실 유리창 너머 무지개를 봤지
끝도 없이 밀려오는 파도, 그 바다 위
소나기가 지나간 정동진
철로 위로 화물 열차도 지나가고
파란 하늘에 일곱 빛깔로 워....
아련한 얼굴 가슴 저미는 손짓으로
물보라 너머 꿈결처럼 무지개를 봤지
조각배 하나 넘실대는 먼 바다 위

소나기가 지나간 오후 중앙로
철교 아래 그 비를 피하던 네가
파란 하늘에 일곱 빛깔로 워...
그리운 것이 저리 멀리 아니, 가까이
차마 다시 뒤돌아서 그 쌍무지개를 봤지
텅 빈 객차 달려가는 그 하늘 위”

정동진 1을 계속 반복해서 들었다. 민영은 지금 이순간은 이 세상에 비와 차, 노래 그리고 나뿐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문득 이 노래의 주제가 무지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곱 빛깔 무지개. 민영의 사전에서 무지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상징하는 단어이다. 이루질 수 없어 슬프지만 그래도 향해가야만 하는 것.

민영은 대학 때 활동했던 교내 록 밴드 “Musk cats of Illusion Field"의 친구들이 떠올랐다. 환상 속에 사는 이들이라는 의미의 밴드, 암울했던 군사정권 시기에 자유와 평화를 노래하고자 했던 밴드였다. 민영은 베이스기타를 쳤었다.

“그 땐 인기도 좋았는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고생스럽게 사는 당시 친구들 떠올 라 혼자 드라이브할 때면 즐기는 이어 생각하기 놀이를 멈추었다. 민영은 자꾸 목포로 가는 길이 무지개를 쫒아 가는 길로 느껴졌다. 그리고 문득 재인의 눈동자가 무지개를 쫒는 사람의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차는 어느 듯 고창을 지나고 있었다.

늦여름이지만 방안에서는 약간의 한기가 느껴졌다. 민영은 작은 여관방에서 혼자 자는 것을 좋아했다. 쾌쾌한 냄새가 나고 이불 속에는 부스럭거리는 것이 가끔 거북스럽긴 하지만 오붓하게 나만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어느 시골 초가집 사랑방 같아서였다. 늙은 시골선비가 구박하는 마누라를 벗어나 모처럼 사유를 즐기는 그런 심정이라 할까.

또 온갖 TV 채널을 돌려보며 다들 유치하다고 비난을 퍼붓던 연예인의 자학적인 쑈나 짝짓기 게임 속의 예쁜 여인들을 마음대로 볼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채널을 이리 저리 돌리다 새벽 두 시경에 잠이 들었다. 잠이 오지 않으면 추억 속에서 작은 기억 한편을 끄집어내어 되새기곤 하는데 이 날은 TV만으로도 충분한 수면제가 되었다.

목포항 여객터미널은 오일장 차례를 기다리는 재래시장 터처럼 한산하였다. 여름도 지나가고 있었고, 경제난에다 잦은 비로 대목을 놓친 안타까움이 항구 분위기에서 민영에게로 전해져 왔다.

항구의 광경에서 수 개의 장면이 동시에 머리 속에 투시되어 들어오지만 그 중에 지각되는 것은 한 두 개뿐이었다. 시골풍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듯한 입놀림과 도시여인의 복장을 한 여인이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붙잡고 이야기를 하며 다니고 있었다. 선교사처럼 보였다. “떠난 놈은 기다릴 필요가 없는 거야. 기다리는 년이 미친년이지.”라는 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나왔다. 그녀가 내 앞을 오질 않길 빌었다. 차마 그녀의 얼굴을 마주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깊은 산골에서 길 떠나 돌아오지 않는 남정네를 한 평생을 기다리는 어떤 여인이 상상되었다. 어떤 남자 욕을 하고 다니는 그녀의 옷은 누가 깨끗하게 해 입히는지 민영은 궁금했다.
 


 정 임

윤정임은 전라남도 해남의 작은 어촌 마을에서 태어났다. 단지 그렇게 알고 있을 뿐이었다. “해남과 작은 어촌”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들려 준 고향에 대한 유일한 정보였다. 하나가 더 있었다. 정임의 어머니는 “지금은 간척되고 없어졌지만 몇 천원만 있어도 싱싱한 바닷물고기는 실컷 먹을 수 있는 그런 곳이었는데”라는 말을 늘 달고 다녔다. 바닷가 출신 어머니는 그렇게 늘 바다와 그곳의 풍성한 산물을 그리워했다. 어쩌면 정임의 아버지도.

정임의 아버지 윤영식은 한반도 최남단의 고읍 해남의 종합고등학교의 교생이었었다. 이 학교 이사장과 먼 친척이라는 인연으로 교생으로 왔지만 본디 교사가 될 의사는 없는 사람이었다. 전통과 여러 가지 역사적 억압에 짓눌려 있던 이곳의 젊은이들에게 현대 유행에 어울리는 세련된 이미지를 가진 대학생의 등장이라는 것만으로도 무미건조하던 일상을 보내던 이 학교에서는 신선한 화제 거리가 되고도 남음이 있었다. 여학생에게 남자 교생의 인기는 당연한 것이지만 이사장과 친척이라는 것도 인기 상승에 은근히 한 몫 하였다. 게다가 그는 국문학이 전공이었고, 대학교에서 연극반 반장도 지냈었다.

출근 첫날 영식은 학교에 들어서자 서둘러 교장실로 향했다. 회색 정장으로 나름대로 상당히 멋을 내고 고집스러운 얼굴과 약간 자신의 자리에 자부심을 가진듯한 퉁퉁한 몸매를 가진 여자 교장이 영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평소에 전혀 하지 않은 듯한 상냥한 웃음을 지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윤선생님 멀리서 오시느라고 정말 수고가 많으셨어요.”
“아닙니다. 늦어 죄송합니다.”

교장은 자상한 억양과 친절한 단어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말에는 아무런 감정이 실려 있지 않음을 영식은 느꼈다. 교장은 약간을 머뭇거리다가 목에서 말을 억지로 끄집어내듯 대화를 이어갔다.

“어떻게 이 시골학교까지 오시게 되었는지....”
“이사장님께서 연락주셔서... 연극을 지도하라고...”
“아 참, 그래요. 다음 달에는 개교 20주년 기념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윤선생님. 우리 여학생들을 고등학생이라 성숙하여... 말씀드리기 뭐 하지만 계시는 동안 언행을 조금 조심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그렇다고 윤선생님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고, 예전에 문제가 된 경우가 있어서...”

교장은 자신을 고용한 이사장의 앞선 배려가 싫었다. 그리고 이 뺀질뺀질해 보이는 어린 대학생에 대해서는 뭔가 혼란스러웠다. 영식과 교장은 모두 이 자리를 빨리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러나 영식은 교장과의 대화에서 목포를 거쳐 온 긴 여정 동안에 내내 상상했던 것보다 교생생활에 대한 기대가 훨씬 더 커졌다.

임기응변에 강한 영식은 교생생활을 잘 하며 지냈다. 영식은 북치고 장구까지 친 개교 기념일 연극을 통해서도 여러 사람들로부터 인정도 받고 많은 칭찬을 들었다. 문제라면 노땅 선생님들과 남학생들로부터 약간의 질시와 견제가 있었다는 것인데 그것도 긴장이 생기면 그 쪽에서 지레 물러서곤 하였다.

학교 어디서나 여학생들은 영식과 팔짱을 끼고 싶어 안달을 했고, 또 그것을 기념사진으로 남기고 싶어 했다. 영식의 바로 옆자리에 서려는 경쟁이 늘 만만찮았다. 그러는 영식도 3학년 이은혜가 옆으로 오면 긴장이 되었다. 그 긴장감을 은혜는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가까이 다가오다가 약간 웃음을 짓고 자리를 다른 학생에게 얼른 양보하곤 하였다. 어떤 때는 그 웃음이 비웃음처럼 영식에게 전달되었다.

벌써 오월 말이 지나고 있었다. 남도의 초여름은 그 해 여름의 무더위를 예고하고 있었다. 영식의 인기도 일주일 후면 끝이 났다. 영식은 매주 토요일이면 그러했듯 그 날도 서울로 갈 길을 서두르고 있었다. 책상을 정리하는데 엑스 모양으로 접힌 메모가 보였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도록 놓아 둔 것이었다.

“선생님, 내일 아침 8시에 목포 여객선부두 대합실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은혜드림”이라고 적혀 있었다. 순간 약혼자의 얼굴이 떠올랐고, 영식의 얼굴은 화끈거렸다. 수많은 사고의 실들이 엉켜 머리 속을 휘감고 있었다. 손은 이미 전화기를 들었다. 약혼자에게 “교생 일을 마무리하고 다음 주에 바로 올라가려면 이 번 한 주는 여기에 있어야 할 것 같아”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이 것은 대뇌가 지시한 것이 전혀 아니었다. 그날 저녁에 목포로 가면서도 목포에 머물 것인가, 서울로 갈 것인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서울로 가져와서 하지”라는 약혼자의 목소리가 계속 귀 속을 들락거렸다.

목포 역에서 가까운 여관을 정하고도 갈등은 멈추지 않았다. 밤 11시30분에 떠나는 마지막 기차 시간이 지나고 나자 바로 후회가 되었다. 영식은 평소답지 않게 자신이 기대하지 않았던 운명에 떠맡긴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기대라는 표현은 어쩌면 정확한 것이 아니었다. 바랬지만 예상하지 않은 것이었다. 아침의 여객선 부두 주변 횟집 판자촌은 화창한 날씨와는 대비되어 무척 궁핍하고 너무 초라해 보였다. 평소 이것이 우리 민초들의 삶의 모습이고, 우리는 있는 그대로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고 다녔던 자신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침부터 강하게 내리 비치는 햇살도 부담스러웠다. 아직도 영식에게는 기회가 있었다.

“선생님, 피곤해 보여요”라며 은혜가 달려왔다.
“응, 밤새 책을 좀 읽었거든..”
“무슨 책이예요?”
“응 버트란트 러셀의 그 책 있잖아. 내가 수업시간에 말했던...”
“글쎄 기억이 잘 안 나요.”

은혜는 처음으로 영식의 팔짱을 마음 놓고 낄 수 있었다. 맨 살이 서로 맞닿았다. 은혜에게서 나는 냄새가 풀잎냄새일 거라고 생각하는 순간 온 몸의 체액이 비정상적으로 흐르기 시작하였고 그 흐름이 뒤죽박죽되는 게 느껴졌다. 체액은 머리와 심장 그리고 다른 한 곳으로 집중되는 것 같았다. 영식은 얼른 바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은혜는 평소 학교에서 무게 잡던 것과는 달리 계속 무슨 말인가를 재잘거리고 있었다. 영식의 이마엔 땀이 흐르고 있었다.

"빨리 배에 올라타서 바다로 나서야지"하는 생각뿐이다. 바다는 무엇을 해도 다 숨겨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머리를 식혔다. 이젠 은혜보다는 주위 사람들의 눈길에 신경이 쓰였다. 그 후 두 사람은 매일 학교와 학생들에게 들키지 않게 남도의 초록빛이 익어가는 초여름 풍광 속을 돌아다녔다. 그들은 아무런 다른 생각을 하
지 않았다. 그들 인생의 황금기처럼 보였다. 은혜에게는 실제로 그랬다. 매일 그들은 서로에게 넘치는 젊음을 과시하려고 노력하였다.

은혜는 정임의 어머니였다. 은혜는 영식이 떠난 후 일년이 체 되지 않아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고향을 찾지 못했다. 일생동안 충분히, 아니 지나치게 많은, 대가를 치루면서 겨우 정임을 교육시켰다. 정임은 주름살이 얼굴에 가득한 할머니가 찾아오곤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었다. 두 번인가 세 번인가는 어머니와 비슷한 또래의 남자와 함께 왔었다.

할머닌 밤새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곤 하였는데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면 할머닌 가고 없었다. 어머니는 그 때마다 눈이 심하게 부어 있었다. 은혜는 “네 아빠는 좋은 사람이었다.”는 말 외엔 아버지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이름조차도. 정임은 자신이 억센 고집을 가진 어머니를 닮았고 생각했다. 정임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 날 유품 속에서 김현승의 시집 속에 숨겨 놓은 젊은 남자의 빛바랜 사진 한 장을 발견하였을 뿐 이었다.


다물

민영은 흑산도행 쾌속 여객선에 올라탔다. 이른 아침이고, 철지난 바다이긴 해도 선내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늦게나마 고향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리라” 생각했다. 맑은 하늘은 아침부터 햇살을 눈부시게 만들었다. 전날의 비가 하늘을 말끔히 씻어주었기 때문이었다.

흰 구름은 솜사탕처럼 하늘에 걸려 있었다. 그러나 상쾌한 기분은 잠시였다. 민영은 객실의 때 묻고 촌스런 문양의 비닐카바가 덮인 의자에 왠지 짜증이 났다. 배를 올라타는 순간부터 나던 배의 기름 냄새가 이미 민영의 신경을 거슬렀고, 어딘 가에 남아있을 구토 물 파편이 냄새를 풍겨내는 것 같았다.

배 멀미를 하는 민영은 의자에 앉자마자 원하지 않는 하품이 자꾸 나왔고, 그것은 민영의 의지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이것이 멀미가 만들어내는 졸음의 징조임을 알고, 스스로 잠을 재촉하였다. 배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민영을 이럴 때 늘 쓰는 방법인 이어 생각하기를 시작하였다.

흑산도는 玆山 이라고 쓰고, 자산 또는 현산이라고 읽는다 했던가? 그 곳에 유배를 간 정약용의 형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가 있지. 그 자산어보는 어민들로부터 들은 자산에 나는 해양생물들의 정보를 정리해 만든 책이라지. 약전은 아마 자산에 있는 동안 내내 한양에 있는 임이 불러주길 애타게 기다리며 인고의 세월을 보냈으리라..

좀 더 많은 책을 쓰지는 않고. 지금도 목민에는 힘쓰지 않고 저 높은 곳의 영감이 불러주길 기다리는 중생들이 많지. 생각을 잇는 중에 갑자기 내가 민주화 투쟁을 한 장본인입네 하고 으스대면서 잘 비껴 넘긴 머리와 기름 낀 얼굴을 가진 중년 정치인과 날카로운 눈동자에 신경질적인 인상을 가진 386세대인 실세라는 사람의 얼굴이 겹쳐 떠올라왔다. 그 얼굴들이 아물아물해지면서 잠이 들었다. 잠에 빠져들면서도 머리가 아프고 배가 약간 아려 흑산도까지 몸이 무사히 버텨줄 것을 민영은 간절히 빌었다.

유민애는 내 옆자리에 와 앉았다. 민영은 그녀를 볼 때마다 늘 자신이 천사를 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민애는 티 하나 없는 얼굴에 항상 바른 자세와 밝은 미소가 있어 항상 주변을 환하게 비추어 주는 것이라 상상까지 했다.

약간 살이 찐 것도 그에겐 매력적으로 보였다. 후에 유명한 조각가의 세 째 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대학 동아리 “글솜씨”에서 만나긴 했지만 어쩌다 한번 씩 동아리를 찾는 민애가 록 밴드를 하면서 오지랖까지 넓어 바쁜 민영을 자주 대할 일은 없었다. 그런 민애는 민영이 한 학년 위고, 이름에 같은 “민”자가 들어간다고 보자마자 형으로 불렀다. 그러나 둘은 동갑이었다. 민영이 4학년이던 해 문리과대학 가을 축제 마지막 날 시중에 가장 잘 가나던 록 밴드 “히 식스”가 학교강당에서 공연을 하였다. 그곳 2층에서 민애는 내 옆에 와 앉으면서 “함께 봐요”했다.

또 민애였다. “함께 봐요”하는 소리가 방금 내 고막을 울리고 난 다음 그 진동이 아직도 울려 나오는 것 같았다. 순간 민영은 멀미 끼를 잊었고, 잠시 행복감에 젖어 있었다. 그리고 이내 잘 생긴 동아리 후배와 팔짱을 끼고 즐거워하던 민애의 얼굴이 떠올렸다. 괜히 부끄러워 주변을 둘러보았다. 억양의 변화가 심한 낯선 전라도 사투리로 떠드는 사람도 있고, 코까지 골고 자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저 멀리 한 쪽에 곧은 자세로 유리창 밖 바다를 내다보고 있는 정장 차림의 남자에 잠시 시선이 멈추었다. 다시 머리가 아파왔다. 잠 속으로 다시 돌아가려는데 흑산도에 곧 도착한다는 소리가 다른 소음과 함께 들려왔다.

흑산도. 민영은 이곳에 채집 여행을 온 적이 있었다. 3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학교 선후배들과 함께 왔었는데, 대학원 식물생태연구실 선배들의 채집 여행을 돕자고 따라 나섰던 것이지만 목적지가 흑산도가 아니었으면 절대 나서지 않았을 것이었다.

다들 의외로 생각했지만 민영은 “이제 공부 좀 해보려고 해”하고 시침일 뗐다. 절해고도의 제법 큰 항구의 이미지와 사납지만 정겨운 바닷사람들의 모습들이 다시 떠올랐다. 여행의 성과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항 뒷골목의 어느 대폿집에서 한 잔하던 생각이 갑자기 그리웠다. 우리 자리에는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에 막걸리를 담아 손님에게나 자신에게 퍽 먹이던 한 술집 여인이 있었다. 얼굴은 이미 오래 전에 잊었지만 “야 니가 공부 지지리도 못한다던 민영이냐.

나 오늘 대학생하고 연애 한번 하자”하던 그 억양과 분위기만은 생생하게 기억해 낼 수 있었다. 특이한 유흥가풍 원색의 복장에 대충 바른 듯한 새빨간 립스틱의 그 녀는 입으로 뱉어내는 험한 단어들을 구사하기에는 어렸고 못나지 않아서 민영에게 더 슬픈 모습으로 다가왔었다. 민영은 가끔 이런 여성들에게서 매력을 느끼곤 했다. 아마 동문들이 없었거나 민애가 아니었다면 흑산도에 한참 동안을 머물렀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여객선에 내다 본 멋없는 사각형 건물들이 병풍을 친 듯 둘러 서있고 띄엄띄엄 몇 대의 선박이 힘없이 들고나는 흑산항 풍경에서 민영은 항구의 에너지를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대폿집이 있던 그 뒷골목을 한 번 가 볼까 했던 생각도 포기하였다. 해적처럼 웃통을 벗어던지고 웃음이 절로 나오는 괴상한 욕지거리를 해대던 바다 사람들과 그들을 기다리던 여인들도 보이지 않았다. 길재인은 미소를 지으며 승객들이 내려서는 계단 아래에 서있었다. 나도 따라 미소를 지으며 마주 손을 흔들 자 재인은 어떤 사람과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었다. 정장차림의 그 사람이었다.

“오랜만입니다” 민영이 늘 하는 첫 인사말이었다.
“오느라고 고생이 많았죠.”

재인의 얼굴에는 여전히 슬픔이 배어 있었다. 또 그 생각을 하느라고 민영은 정장 차림의 인물을 잠시 잊고 있었다.

“참, 한 박사님. 인사하시죠”
“이 분은 사업을 하시는 김영준 사장님입니다.”
“그리고 이 쪽은 자연학자 한민영박사님. 그렇게 소개하면 맞나요?”

영준과 민영은 악수를 하였다. 영준의 강한 힘이 손아귀를 통해 민영에게 전달되었다. 반듯한 얼굴에 짧은 머리를 하고 있었지만 사업가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저는 조그마한 개인 연구소를 하는 한민영입니다.” 그리고 명함을 건냈다. 영준은 민영과 또래인데도 훨씬 여유가 있었다.
“말씀을 들었습니다. 만나 뵙게 되서 반갑습니다.” 영준은 서둘지 않고 민영의 명함을 지갑에 넣고 가지런히 정리된 명함들 중에 한 장을 민영에게 꺼내 주었다. “한강 무역주식회사 대표이사 김영준”이라고 적혀 있었다.

재인은 미소를 계속 짓고 있었지만 자리를 옮기길 원하고 있다는 것을 두 사람은 알아 차렸다. 재인은 특유의 낮고 은근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저 쪽에서 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민영은 “또 배야?”하고 마음속으로 말하자, 멀미 기운이 다시 살아나는 듯 하였다. 세 사람은 항구를 가로 질러 걸어갔다. 가까이에서 본 항구의 전경은 민영이 여객선 작은 창으로 내다 본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뒷골목의 추억마저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 그 근처를 지날 때는 애써 골목 입구를 외면하였다. 재인은 민영의 감정을 눈치 챈 듯 웃으며 말하였다.

“많이 변했죠?”
“제가 이곳에 온 적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셨죠?”
“하하.. 그냥 한번 이야기해 본 것입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거든요.”

민영은 재인이 단순히 던져 본 말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준은 길을 아는 듯 앞서 가고 있었다. 그는 항구의 상가가 끝나가는 곳 앞 부두에 매달아 놓은 작은 배 앞에 멈춰 민영과 재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재인은 그제야 다시 말을 이었다.

“저 배로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다물도로 갑니다.”
“아, 예..”

민영은 이럴 때도 머리 속에선 여니 의미 이어가기를 하였다. 다물이라면 필시 多物일 테고. 그렇다면 수산물이 풍부한 것이라는 뜻일까? 다물은 다물다는 뜻이고 그러면 이 이름은 벌려서 다물려는 입처럼 생긴 섬 모양에서 나왔을까? 아니면 다물은 되찾자는 뜻도 되는데. 우리 만주벌판을 되찾아 오자는... 그건 이 남도의 작은 섬 이름치곤 너무 큰 비약이고.. 그 때 재인이 이어가기를 끊었다. .

“한 박사님, 배에 타시죠.“
“여기는 박 선장님. 저와는 중학교 동창이죠. 흑산중학교.”

박 선장은 무표정하고 잔뜩 때가 묻은 옷을 입고 있었지만 기품이 있었고, 진심으로 환영한다는 눈빛을 보내며 민영에게 손을 내밀었다. 선장의 손바닥 두께는 민영의 것의 두 배나 되었고, 손바닥에 박힌 여러 개의 못은 “자네는 바다 생활을 할 수 없을 게야” 하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해왔다. 그렇게 두 사람은 이름도 말하지 않고 악수만 나누었다.

바다는 그야말로 장판과 같았다. 작지만 빠른 속도로 달리는 뱃전에 서니 민영에게 멀미는 금방 남의 일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항구를 빠져나오자 흑산도 밖 저 멀리 작은 섬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민영은 자신이 마치 영화 “용쟁호투”에서 홍콩에서 어떤 섬으로 무술시합을 떠나는 이소룡이 된 듯 가슴을 펴고 바닷바람을 맞이하니 잊고 있었던 호연지기가 되살아났다. 그새 섬, 다물은 민영에게 다가오며 팔 벌려 안으려 하고 있었고, 민영은 그 속으로 자신이 스며들어 가고 있음을 알고도 저항하지 않았다.



 선장

총알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박윤의 눈에는 오직 곁에 있는 동지와 우리 땅의 민주화만 보였다. 그들에게 적은 너무 가까이 있었고, 어제까지 이 도시를 점령하였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의 젊은 사람들은 젊은이 그들만의 분노로 그들 자신이 함정으로 점점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고 싶지 않았었다. 21일은 시민들이 진주군을 몰아낸 해방의 기쁨으로 흥분에 들떠있을 때 박윤은 어둠을 틈타 도심과는 달리 적막한 도시 외곽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학생들과 시민들이 군을 내몰 때 그는 선봉에 서있었고, 언제인지 모르지만 오른쪽 어깨에 총상을 입었다. 그의 몸은 피로 흥건히 젖어 있었지만 통증은 물론이고 총상에 대한 인식도 그에겐 없었다. 함께 있던 누군가가 윤의 피가 옷을 흠뻑 적시고 옷자락을 따라 방울을 바닥으로 줄줄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소리쳤다.

“윤아, 이게 웬 피여? 어디 다친 것 아녀?”
“아니어 괜찮어.” “피는 무슨 피....”

윤은 그제야 자신은 피를 몹시 많이 흘렸고, 몸을 적시고 있는 습기가 땀이 아니라 피라는 것을 알았다. 왠지 아까부터 춥다고 여겨졌던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갑자기 온 몸에서 힘이 빠지고 있음을 느꼈다. 윤은 마치 뼈대를 제거 한 마네킹처럼 접히듯 무너져 내렸다.
 
“윤아, 윤아, .....”

윤의 귀에는 메아리처럼 들리는 “윤아”하는 소리가 점점 작게 들리면서,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고 계시는 외할아버지의 모습이 점점 클로즈업 되면서 보였다. 어머니로부터 말로만 들었던 1919년의 3월 4일인가 5일인가에 목포에서 만세 운동에 앞장서다가 총상을 입고 돌아가셨다는 할아버지이었다. 얼굴은 어머니에게조차도 뚜렷한 기억이 없었다고 하였는데 윤에게는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다. 외할아버지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윤이 깨어난 것은 23일 저녁이었다. 윤이 꿈과 현실을 인식하지 못한 체 눈을 떠보니 희미한 형체로 여겨지긴 했지만 여러 사람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아니고 자세히 보니 누나와 매형들 그리고 아버지가 있었다. 두 누나는 울어서 그런지 눈두덩이 부어 있었고, 매형과 아버지는 그저 반가움과 놀라움이 반씩 섞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윤아.. 윤아”
“어쩐 일이야?”

누나와 매형들은 동시 무엇인가를 물어왔지만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이 묵묵히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하지만 윤은 아직 자신이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얼핏 가족들 사이로 다른 사람이 하나 서있는 것이 보였으나 누군가를 알 정도의 뇌 기능이 작동하지 않았다. 지금 자신은 다쳤고, 광주시내 어느 병원에 누워있을 거라는 생각에 아직도 승리의 흥분이 가슴 속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가족들 앞에 나라를 구하려다 자랑스러운 부상을 입어 누워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젠 가야해요”

그리고 일어서려고 노력했다. 힘이 겨웠고, 내장 속이 비었으며, 몸이 가벼워졌음이 비로소 감지되었다. 그 때 가족들 뒤에 서있던 사람이 영신임을 알았다. 그런데 영신은 울고 있었으며, 윤은 그것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이 놈아 여긴 목포야”

아버지의 거칠고 된 소리가 나왔다.
“아니 나가 목포에 왜 와있단 말이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머리 속엔 도청 앞 금남로를 지키는 학우들 곁으로 빨리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그럼 광주로 가야 혀”
“영신인 여기서 무엇 한 겨”
윤은 소리를 질렀다. 마치 여기 와 있는 것이 영신의 죄인 것처럼.
작은 누나가 울먹이며 소리 낮게 이야기하였다. 광주에서 큰 싸움이 일어났고, 아버지는 외동아들이자 집안의 장손이 시민군 선두에 있음을 소문으로 듣곤 직감적으로 자신이 구해오지 않으면 자신의 장형처럼 같은 나라 사람에게 개죽음을 당할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때마침 지역에서 광주로 사람들이 몰리던 때라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시내로 잠입이 가능하였다. 그리고 부상당한 그를 운좋게 발견하였고, 도청 인근에 있는 먼 친척집에서 응급치료를 하였다. 그리고 노인은 다음날 하루 하고도 반나절이나 걸려 겨우 소독약과 가루 지혈제를 상처에 뿌리고 붕대로 상처를 처맨 다음 젊은 부상자를 업고 남의 눈을 피해 목포로 왔던 것이었다. 윤에게 수면제까지 먹여 가면서 데리고 온 것이었다. 아버지의 고생이 아주 컸다는 것도 덧 붙였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윤의 귀에 정확게 전달되지 않았다. 윤은 일어서려고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이놈아 그 몸으로 어딜 가”
“저는 가야합니다”
윤은 침상에 내려와 환자복을 벗으려는 동작을 하면서 벽에 걸려있는 바지에 손을 내밀자 중심을 잃고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러자 아버지는 소리쳤다.
“뭐혀 이놈을 묶어”

아버지는 광주에 일어난 싸움의 결말을 젊은 시절의 경험을 통해 내다보고 있었으며, 그 후유증에 대해서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자신의 입장에서 보면 자식을 빨리 제정신을 차리게 하고 어디론가 도피를 시켜야 한다는 것에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덩치 큰 큰 매형과 누나 둘이서 윤을 묶는 동안 아버지가 영신과 병실 밖으로 함께 나가는 것을 발버둥치는 윤의 눈에 얼핏 보였다.
윤은 묶이고 입이 가려진 상태로 조용히 집으로 옮겨졌다. 이틀 후 25일 이른 새벽 목포 북항에서 작은 어선 한 척이 소리 없이 항구를 빠져나가고 있었으며, 그 배에는 선장과 남자 두 사람 그리고 젊은 여자 한 사람이 타고 있었다.

박윤 선장은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으면서 아내 영신이가 하는 지난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아버지 생각에 눈에 고이는 물의 양이 늘어갔지만 굳이 감추려고 하지 않았다. 아버진 고문까진 아니지만 모진 고초를 받았고, 윤은 아버지가 알리지 말라고 한 탓에 아버지의 임종은 물론이고 사망 소식도 듣지 못했었다. 윤이 다물도에 살아있었다는 사실은 몇 년 동안 목포에 살았던 가족도 몰랐었다. 아니 알지 않으려고 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윤은 함께 거리를 지키던 학우들이 다섯이나 죽었다는 소식도 일 년이나 지난 어느 날 영신으로부터 들었다. 처음엔 아버지의 설득과 만류에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섬까지 따라 온 비겁함에, 나중엔 친구들과 함께 죽지 못한 죄책감 때문에 섬의 다른 사람과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살았다. 1990년 겨울, 서북쪽으로부터 칼바람이 유난히 강하게 불렀던 날 서울에 있던 중학 동창 길재인이 찾아오기 전까진.
재인은 그 해 가을 중학 동창회에서 미친 듯이 뱃일만 해대는 동창 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항상 강한 라이벌이자 흑산도의 희망이라고 스스로 믿었던 둘 중 다른 한 친구의 행방불명이 한동안 믿기지 않았었다. 재인은 목포로 유학 나온 고등학생 친구들 사이에 탐미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아 왔던 터에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닌 탓에 일정 기간 윤과는 교류가 없었었다. 물방울을 동반한 거센 겨울바람과 함께 찾아온 재인으로 두 사람은 그 동안의 학업에서 선두를 차지하기 위한 라이벌 의식과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이념의 차이는 서로에게 아무런 장벽이 되지 않았다. 둘은 한 참을 부둥켜안고 울었다.

“자자 이제 한잔 더 합시다.”
두 사람이 다시 눈시울 적시자. 민영은 분위기 전환을 위해 한 마디 하였다.
“그래요”
재인도 멋쩍게 거들었다.
“김 선생님도 요.”
영준은 무표정, 아니 약간은 복잡한 심경을 눈빛에 나타내었지만 무반응으로 일관하고 있었음을 민영은 느꼈다. 물론 민영은 배에서부터 그의 정체도 궁금하였다.
“자, 사모님도 앉으시죠?”
“그동안 마음고생이 많으셨겠네요?”
민영은 내친 김에 분위기메이커 역할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는 사이에 시간은 흘러갔고 여름 끝자락에 부는 선선한 바닷바람이 다섯 사람의 마음 속까지 파고들어 그들에 속에 엉켜있던 무엇인가를 내몰아 나가고 있었다. 맑은 산소와 신선한 안주가 그들의 주량을 한껏 늘려 놓았고, 그 섬에는 아직 소주가 많이 남아 있었다. 민영은 돌아가며 한 구절씩 읊조리기 하기를 제안하였다. 그리고 그는 "발길 따라서 걷다가 바닷가 마을 지날 때 착한 마음씨의 사람들과 밤새워 이야기 하리라..."로 시작되는 "나들이"를 불렀다. 영신의 차례가 오자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한 마디 하였다.
“작은 분노는 파도로 덧칠을 하고
그리움은 바람으로 부풀려 지네“
그런 다음 소주 한 잔을 단숨에 마시고, 눈물을 훔쳤다.
그렇게 그날 다물도의 밤은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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