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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6/25(토)
영종여객"에 관한 추억  

 

‘영종여객’에 관한 추억
글쓴이 : 이철우
날 짜 :
2005-04-16 12:30
조회 : 51
어린시절 우리 마을에는 두 번은 서울로 두 번은 철원 종점을 향하여 하루에 네 번 완행버스가 지나다녔다.서울행은 아침 9시 오후 네시 철원행은 오전 11시 저녁6시 대략 이시간대에 울퉁불퉁 비포장길을 달리며 외부세계와의 유일한 통로 역할을 했다. 그 버스가 바로 영종여객이다.

어린시절 에는 완행버스에도 ‘안내양’이 있어서요금을 계산하고 승객의 편의를 돕는 역할을 했는데 80년대 들어서면서 사라졌다. 아무튼 영종여객은 시계가 귀하던 시절 에는 논밭의 농부들에게 시간을 가늠하는 시계역할을 했다. 11시 철원행 버스가 올라가면 어김없이 점심을 위해 일을 접거나 밥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오는 며느리의 모습이 저멀리 반갑게 보이는 것이었다.

어떤 부지런한 할아버지 한분이 밭에 나가시는데 할머니께서 “‘점심버스’(그때는 11시 철원행을 그렇게 불렀다.)올라가면 집으로 오셔서 점심드세요“라고 일렀다. 부지런한 할아버지는 그만 일에 열중하다가 그 점심버스 올라가는 것을 보지못했다.얼마나 일을 했을까 점심을 차려 놓고 한참을 기다리던 할머니는 걱정이 된 나머지 할아버지가 일하는 밭으로 가 봤더니 그때까지 일을 하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할머니께서는 ”저녁 새참때가 되었는데 여보 뭐하세요?“ 하였더니 할아버지께서는 그제서야 점심버스를 못 봤노라고 싱겁게 대답하은 것이다. 이 일화는 뒷날까지 우리 어린아이들에게까지 우스갯소리로 전해졌다.

꼭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지 않아도 ‘버스올라 갔니?’ ‘버스 올때가 됐는데’라는 말은 일상적으로 하루의 일정한 시간을 나타내는 말이었다.동네앞 비포장길을 달리는 영종여객 완행버스는 모든 사람들의 주시의 대상이 되고도 남았다. 어디 그뿐인가? 중부전선 철원 포천 연천 전방 장병들의 휴가와 그 가족들의 면회길의 반려자였고 짖궂은 통학생들의 추억어린 만남의 장이기도 했다.앞자리 때묻은 시트에 ‘애인구함’이라고 써넣고는 낄낄대며 장난치던 까까머리 고등학생들을 우리는 기억한다.

서울, 아니 바깥세상과 우리 지역을 이어주던 파발마 영종여객! 내가 다커서 이제 어른이 되어서도 변함없이 달리던 영종여객이 어느날 그 이름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다.‘선진고속’이라는 버스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모양이다. 의정활동을 하느라고 새벽에 나갔다 밤늦게 돌아오는 생활을 1년남짓 하다보니 그만 영종여객이 없어진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며칠전 손수 운전을 하면서 지역을 다니다 ‘어! 선진고속이 오는 왜 이렇게 많이 오지?’
그러고 보니까 영종여객이 안보이는 것이었다.그렇다. 우리경제의 변화와 버스운송업의 변화의 단면이 바로 영종여객이었는데 영원할 것만 같던 영종여객도 추억으로 돌려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1980년대 이전 자가용이 보급되기 전에는 대중교통은 국민들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이때까지 버스는 언제나 만원이었다.고속버스는 예매를 해야만 했고 서울 시내버스는 짐짝 취급을 받아도 필사적으로 올라타야 했고 영종여객 또한 거의 독점노선으로 그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자가용이 이제 국민들의 제1의 교통수단이 되면서 대중운송사업은 그 사업성이 떨어지고 시골의 버스는 국가에서 그운영비 지원을 해주지 않으면 한시도 운행될수 없는 형편이 되어버렸다.장거리 운행 노선도 승객 서너명을 태우고 오가기 일쑤였다. 이제 대중운송사업이 오히려 틈새시장을 개척해야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전통적인 노선을 고집하다가는 적자가 누적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변화하는 교통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아무리 오래된 기업도 하루아침에 문을 닫는게 현실이다.영종여객의 경우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마 여기에게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것이다. 마장동 시절의 전성기에서 상봉동으로의 이전은 이미 쇠퇴기의 시작이었다. 변화되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면 우리는 아무리 화려한 과거를 가지고 있어도 아니 지금도 남부럽지 않은 영화를 누린다 해도 그것은 곧 한토막의 추억거리에 지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영종여객의 어제와 오늘을 보면서 다시 한번 깨닫는다.

지금까지 우리들의 발이 되어 주었고 우리지역을 구석구석 달리며 함께했던 영종여객 종사자들에게 새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영종여객은 이제 우리세대의 아쉬운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2005년 4월 20 한탄강가에서 이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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