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노컷뉴스
2005/6/24(금)
"현 정부, 아젠다 없는 부분적 개혁만으론 성공 어려워"  

"현 정부, 아젠다 없는 부분적 개혁만으론 성공 어려워"

[노컷뉴스 2005-06-24 08:19]  


“지금 현 정권이 자꾸 흔들리고 문제가 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어쨌든 형식적 민주화가 달성됐고, 국민소득도 이제 1만달러 넘어섰다면, 1945년 8월 15일에 요구됐던 시대적 과제는 상당 부분 달성한 것인데, 이 토대 위해서 뭔가 새로운 아젠다, 즉 모든 국민들이 수긍할 수 있는 저런 방향이면 내가 일정 정도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겠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아젠다를 제시했었어야 하는데, 그런 아젠다 없이 부분적인 개혁 문제를 전면화 시켜 하다 보니 자꾸 진흙탕 싸움 비슷하게 됐고, 결론이 별로 없어진 것이죠.”

▶ <한국사로 읽는 성공한 개혁, 실패한 개혁>의 저자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 연구소장

◎ 사회/김어준>
성공한 개혁, 실패한 개혁, 김춘수에서 노무현까지, 이 책에는 신라는 어떻게 통일 했나, 의장은 왜 실패 했나 등의 이야기가 쭉 이어지네요.



◑이덕일 소장>
네. 고대부터 현대까지 개혁이란 코드를 갖고 우리 역사를 뒤집어본 책입니다.

◎ 사회/김어준>
사실, 노무현 정권뿐만 아니라 어떤 정권이든지 새로 들어서면 개혁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최근 50년뿐만 아니라 수백 년 전에도 그랬을 것 같아요.

◑이덕일 소장>
개혁이 시대적 과제일 때가 있죠. 우리 역사를 보면 고려말이 개혁열풍이 드높았던 때고...



◎ 사회/김어준>
그때도 개혁이라는 말을 썼나요?

◑이덕일 소장>
그 당시는 표현 자체가 개혁이라기보다는 고려말 수구세력은 권문세족이라고 하고, 개혁 세력을 신흥사대부라고 하는데, 결국 고려말에는 국왕들도 전부 개혁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되는 상황이고, 그래서 개혁이 화두인 시대가 고려말에 거의 100여년에 걸쳐서 쭉 이어지는데, 우리 사회도 지금에 와서 개혁이 어느 대통령이 누가 되던지 항상 개혁을 얘기할 수밖에 없는 것은, 개혁이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추세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 사회/김어준>
그러면 우리 역사에서 개혁이 최대 화두가 됐던 적이 고려말인데, 또 언제가 있습니까?

◑이덕일 소장>
조선말이죠. 그러니까 개혁이 화두가 되는 시대는 모든 역사가 한때는 잘 나가다가 막히고, 또 한쪽세력이 계속 집권하다보면 거기에 많은 문제점들이 발생하는데, 그럴 때 개혁의 목소리가 드높아지는 것이죠. 그럴 때 개혁에 성공하면 그 사회 체제가 계속 유지되고 발전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고 개혁의 실패를 하게 되면 그 사회가 퇴보하게 되는 것이 역사가 말해주는 개혁입니다.

◎ 사회/김어준>
역사 속에서 개혁 성공 실패 사례들을 보면 성공한 개혁과 실패한 개혁의 공통점이 있을 것 같아요.



◑이덕일 소장>
성공한 개혁들은 미래를 지향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고, 또 하나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아젠다를 제시한다는 것이죠. 그 시대 사람들보다 한 차원 높은 아젠다를 제시하고 그 아젠다를 추구해 나가는 과정에서 사회를 통합하는 그런 쪽의 정치 형태로 보일 때는 그 개혁은 성공을 했고, 그렇지 않고 진흙탕 속에서 서로 막 뒹굴면서 이렇게 저렇게 했을 때는 결국 시끄럽기만 하고, 결론은 막상 지나고 보면 사회만 시끄럽고 실제 변한 건 없는 그런 현상이 나타나죠.



◎ 사회/김어준>
대표적인 실패 사례 몇 가지만 말씀해 주십시오.



◑이덕일 소장>
일단 대원군 같은 경우가 초기 등장할 때는 상당히 개혁 지향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대원군이 호포법(戶布法)같은 것을 제정한 것은 요즘 우리가 부동산 때문에 아주 시끄러운 데 당시 대원군이 했던 호포법은 지금 시각으로 강력한 법이었고, 일반 백성들이 쌍수를 들어서 환영을 했고...



◎ 사회/김어준>
법의 내용이 뭐였죠?

◑이덕일 소장>
요즘 병역 문제하고 관련 있는데, 조선 양반들은 병역 의무가 없는 사회였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고치려고 역대 많은 노력을 했지만 다 실패했고, 그 당시 병역은 직접 사람이 가는 것이 아니라 돈을 내면 그 돈으로 사람을 써서 병역을 쓰는 것인데, 그런데 양반들은 호포를 법으로 안 내도 되게 규정돼 있었던 것이죠. 이걸 갖다 대원군이 모든 양반한테 다 내게 바꾼 것이니까, 거의 혁명적인 개혁이었는데, 그럼에도, 대원군 개혁은 왜 실패 했냐면 결국 그 지향점이 왕권 강화라는 봉건적인 이념 체제를 다시 재건하는데 개혁의 목적을 두었기 때문에 결국 실패하게 된 것이죠.



◎ 사회/김어준>
실패했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 결과가 드러났다는 것입니까?

◑이덕일 소장>
호포법은 성공했는데, 여타 대원군 개혁의 지향점이 그 시대에서 요구하는 신분제 철폐라든가 보다 진보적인 것과 맞지 않았고, 그 당시 사회가 서세동점(西勢東漸)이라고 해서 서양 세력이 강하게 동양으로 밀려들어 올 때고 단적인 예로 서양 세력이 유일하게 신미양요(1871년), 병인양요(1866년)두 차례에 걸쳐 동양에서 패한 전쟁은 조선에서 벌어진 것이 다 인데, 이때 승리했을 때 빨리 개방했으면 대등해 질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성리학적인 세계관 이런 것들 때문에 시대흐름에 뒤떨어지면서 결국은 실패한 개혁이 된 것이죠.



◎ 사회/김어준>
개별 개혁들은 성공한 것들이 있는데, 사실 그 개혁들이 지향하는 것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어서 전체적으로는 실패했다는, 또 다른 실패 사례는 뭐가 있을까요?

◑이덕일 소장>
갑신정변 같은 경우는 지향점은 옳았지만 근대적 국민국가로 가야하는데, 그 당시 백성들의 수준에 비추어 볼 때 너무 앞서 갔고, 그리고 또 하나 그 수단으로서 일본 군대의 도움을 받아서 하려고 했던 것에 일반 백성들의 거부감이 아주 심했죠. 그러니까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일반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쭉 나가야 성공하는 것이지, 개혁 주체 세력만이 독선에 빠져서 우리만이 옳다고 할 때는 실패한다는 것을 갑신정변에서 보여준 것이죠.



◎ 사회/김어준>
그렇게 비교해 보다면 현 정부가 그런 경우가 좀 있는 것 같습니다. 부담스러우십니까?

◑이덕일 소장>
많은 분들이 말씀해 온 부분이니까, 현 정부가 개혁 지향적이라고 하는 것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데, 문제가 되는 것은 ‘현 정부의 아젠다가 뭐냐, 개혁의 최종 종착점이 어디 있냐’하는 부분하고, 그러나 목표들을 제시했을 때 그 목표와 결과물들이 다르게 나온 것이 상당히 많지 않습니까, 그것은 결국 능력의 이야기거든요. 그런 부분들을 잘 조화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 사회/김어준>
우리 역사 속에서 초기 의도는 좋았는데, 성공하지 못했던 개혁은 또 어떤 게 있을까요?

◑이덕일 소장>
숙종 같은 경우도 실패했다고 볼 수 있는데, 조선후기의 문제는 국왕 권보다 한 정당의 세력이 훨씬 더 강하다는 게 문제였는데, 나중에 숙종은 상당히 강한 왕권을 조선 역대 왕 중에서 태종이래로 가장 강한 왕권을 구축했습니다.

그러나 왕권 강화라는 것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돼야하는데, 왕권 강화 자체가 목적이 되다 보니 숙종 때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그러니까 숙종의 정치 스타일이 이당을 소론으로 올려서 노론을 죽이고, 노론 올렸다가 남인 죽이고, 이런 식으로 정권 교체를 자주 하면서 왕권은 강화 됐지만 그 왕권 강화 된 게 역사 발전에는 큰 도움이 안됐던, 그래서 만약 숙종이 강력해진 왕권을 갖고 미래를 지향했으면, 우리가 알고 있는 여자 치마폭에 쌓여있던 그런 임금이 아니라 아주 강한 개혁 지향성이 있었던 임금으로 각인될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했던 것이죠.

결국, 숙종 시대 때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는데, 그 죽음의 의미를 찾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이죠. 그러니까 정권과 왕권만으로 위한 정치를 펴다 보니까 오늘날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로 간 것이죠.

◎ 사회/김어준>
역사 속에서 어떤 변화든 처음에는 저항에 부딪히지 않습니까, 기존에 있던 대로 해서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고, 그 사람들이 변한다고 하면 자기들의 파이가 줄어들까봐 어느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변화 자체가 어려운 법인데, 그런 저항을 다 뚫고 변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큰 성공 사례는 어떤 것이 있나요?

◑이덕일 소장>
큰 성공 사례는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예를 들 수 있는데, 신라라는 나라는 한반도의 동남쪽 한 귀퉁이 있는 아주 작은 나라였고, 고구려나 백제와는 국력이 비교가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삼국 통일을 달성한 이유는 김춘추가 자기 딸과 사위가 백제에 전사한 것을 기회로 해서 삼국 통일이라는 신라 사람들로서는 감히 꿈도 꾸기 어려웠던 아젠다를 제시하고, 그 아젠다를 실현 할 수 있는 새로운 주체 세력을 김유신과 같이 만듭니다.

그래서 신 주류 세력을 만들어서 이 신주류 세력들이 삼국통일에 길로 매진을 하니까, 그 현실에 안주하던 서라벌의 진골귀족들도 워낙 압도적인 아젠다에다 자기희생적인,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군은 항상 코너에 몰렸을 때 화랑들이 나가서 자기 몸을 던짐으로서 전세를 역전시키지 않습니까, 이런 자기희생적인 모습까지 보이니까 할 수 없이 고 귀족 세력들도 마지못해 따라왔고, 그것이 말하자면 역사(영적)폭발을 일으켜서 삼국 통일을 달성한 것이 큰 성공 사례죠.



◎ 사회/김어준>
김춘추와 김유신이 목표를 제시하고, 그 목표를 누군가를 내세워 희생시켜 폭발적으로... 그런 예 말고 또 성공적인 사례를 뭐가 있을 까요?

◑이덕일 소장>
정조 같은 경우도 당대에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는데, 정조가 처했던 현실이 노무현 대통령 처음에 당선 됐을 때 당선자의 글에서 ‘정조를 지향하라, 정조를 닮아라!’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뭐냐 하면 정조는 미래를 지향했다는 것이고, 한 예로 정조는 규장각을 만들었는데, 그 규장각은 개혁 문신들을 키우는 그런 기관입니다. 그런데 그 규장각의 검사원들은 첩의 아들들을 다 갖다 썼습니다. 정조는 특별히 너희들 쓰는 것은 일부러 뜻이 있어서 쓰는 것이다. 라고 말을 했는데, 그 이유는 그 당시 사회가 신분제 철폐를 요구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정조가 선진적으로 그것을 추구했습니다.

또 하나는 당시는 노론일당독재 국가이고, 사상적으로는 성리학, 유일사상 체제인데 이 속에서 정조는 천주교를 끊임없이 관대하게 다룸으로서 사실상 천주교를 용인했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은 성리 학자를 자처하면서도 노론 쪽에서는 성리학자들이 전부다 반대당파인 남인 소속들이니까 계속 끊임없이 반체제 사상이라는 이유로 처벌할 것을 요구하는데, 정조를 그걸 다 거부하면서 계속 천주교를 관대하게 대합니다.



◎ 사회/김어준>
그 이유는 뭡니까?

◑이덕일 소장>
그 당시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이 더 이상 일당독재의 유일사상체제로는 조선의 앞길을 개척할 수 없다는 사고 속에서 다른 사상들도 용인하는 다원 체제를 만들려고 했던 것이죠.



철저한 성리학자를 자처하면서 다른 천주교라는 사상을 용인하는 정책을 쓴 것입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정조의 부친이 사도세자지 않습니까, 그 사도세자가 당시 집권당인 노론에 의해 살해당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조는 집권 후에 노론의 칼을 뽑아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노론과도 같이 갈 수 있는 부분은 같이 가면서 정치 개혁을 추구했던 것이고, 그 정치 개혁의 완결판인 화성으로 천도하려고 했던 것인데, 화성천도를 단행하기 이전에 정조가 사망함으로서 미완성의 개혁이 된 것입니다.

◎ 사회/김어준>
태종은 어땠습니까?

◑이덕일 소장>
세종의 공 반 이상은 태종에 것이라고 말했는데, 태종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다 보니까, 혁명 동기들이 많이 있단 말예요, 만약 태종이 혁명 동기들을 자기가 제거하지 않고, 그냥 방치 했으면 나중에 세종대왕은 혁명 동기들과 싸우느라 왕 노릇 제대로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태종의 냉혈한이라는 말을 들으면서까지 자기와 함께 했던 쿠데타 국민들을 다 제거한 상태로 왕권을 세종에게 물려주니까 세종은 왕권에 대한 도전과 위협 없이 세종 르네상스를 펼쳐 나갈 수 있었던 건데, 그래서 처음에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 초기에 태종을 지향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50년 동안 쭉 한 세력이 집권하면서 많은 그 병폐가 쌓였는데, 그 병폐를 초기에 제거하면 후기에는 세종의 역할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순서가 거꾸로 가면서 결국은 김대중 대통령의 개혁도 그다지 성공적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결과가 되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사회/김어준>
역사속의 어떤 왕들과 비교해 보자면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을 과거의 왕들과 비교해 매치를 시키자면 어떻습니까?

◑이덕일 소장>
박정희 전 대통령 같은 경우는 많은 논란들이 있지만 그 당시 근대화라는 가치를 내걸고 그것으로서 온통 사회의 아젠다를 이끌어 갔지 않습니까, 물론 아젠다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민주화를 희생했고, 여러 부정적인 모습들이 있는데, 그럼에도, 결국은 그 아젠다를 제시했던 근대화라는 부분이 상당부분 우리 사회에서 달성이 됐고, 그래서 우리가 역사를 볼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이 누구하고 닮았냐, 라는 차원보다 해방 직후 1945년 8월 15일에 우리 사회의 과제가 그런 경제적인 근대화와 정치적 민주화 이 두 가지를 달성하는 것이었는데, 결국 근대화 부분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이 있고, 그 다음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이나 이런 분들은 민주화를 달성하는데 상당한 공이 있다. 그래서 우리 현대사를 통합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사회/김어준>
역사 속에서 부국강병한 그러면서 지금의 민주화에 해당하는 역할이 과거에는 뭐가 있을까요?

◑이덕일 소장>
그건 시대마다 상황이 다르고 그 시대마다 해결해야할 요구들이 틀린 거거든요. 그러니까 그러한 요구들을 어떻게 잘 풀어내느냐, 지금 현 정권이 자꾸 흔들리고 문제가 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어쨌든 형식적 민주화가 달성됐고, 국민소득도 이제 1만달러 넘어섰다면, 1945년 8월 15일에 요구됐던 시대적 과제는 상당 부분 달성한 것인데, 이 토대 위해서 뭔가 새로운 아젠다, 즉 모든 국민들이 수긍할 수 있는 저런 방향이면 내가 일정 정도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겠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아젠다를 제시했었어야 하는데, 그런 아젠다 없이 부분적인 개혁 문제를 전면화 시켜 하다 보니 자꾸 진흙탕 싸움 비슷하게 됐고, 결론이 별로 없어진 것이죠.



◎ 사회/김어준>
김춘추가 그랬듯이 큰 틀의 아젠다를 먼저 제시해 줘야 하는데,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큰 틀의 방향 제시가 잘 안 보이다 보니까 사소한 것 갖고 싸우고 있는 것이군요.

◑이덕일 소장>
그렇죠. 현 정권에도 물어보면 도대체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는 것이고, 당신들은 우리 사회의 어떤 모습의 지향점을 갖고 나가는 것이냐 그걸 얘기해 주는 사람이 없다는 거죠.

◎ 사회/김어준>
역사적으로 성공한 개혁들은 가장먼저 시대의 요구에 따라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큰 아젠다 제시를 가장 먼저 하게 되는 겁니까?

◑이덕일 소장>
아젠다를 선언문처럼 제시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이 왕이나 이 정권에게 가장 중요시하게 생각하고 있고, 이 정권이 나가는 방향은 이거라는 점을 국민들이 알게 하고 그 쪽 방향으로 국민들을 따라가면서 사회 통합을 이룰 때 성공한 사례가 많은 것이죠.

◎ 사회/김어준>
개혁의 성공과 실패를 연구한 분으로써 첫 번째로 현 정권에서 잘 보이지 않는 부분이 모두들 수긍하거나 반대한 사람들조차 큰 소리로 반대할 수 없을 정도의 큰 명분과 방향성 제시 아젠다 제시가 없다는 것이 군요.



◑이덕일 소장>
예를 들면 다산 정약용 선생 같은 경우 주역(周易)이란 책을 해설자로 씁니다. 그런데 주역이 점치는 책으로 인식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정약용 선생은 그것이 아니라 성인들이 주역이란 책을 쓴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개인 점치라고 쓴 책이 아니라... 그러면서 그 이유를 드는 이유는 정치가가 정치는 하는데 어떤 정책을 펼치는데, 좋을 뜻에서 나왔지만 이 좋은 뜻에서 나온 정치가 실제 결과도 좋게 될지 나쁘게 될지 알 수 없을 때 하늘의 뜻을 엿보기 위해 주역이란 책을 썼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말입니다.



뜻이 선하다고 결과가 나쁘게 나왔을 때 역사는 결코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뜻이 옳은데 왜 반대하냐! 이런 것은 그야말로 아마추어들이 할 얘기고, 실제 뜻이 좋으면 결과도 좋게 나올 수 있는 정도의 철저한 준비와 능력이 필요한 것인데, 초기 현 정권에서 압도적으로 사회 전체가 개혁 분위기였는데, 그런 좋은 분위기 속에서 철저한 준비를 하고 프로그램을 제시한 것인지, 상당한 의구심이 들죠.

예를 들면 지금 부동산 문제 같은 경우도 뜻이야 현 정권에서 강력하게 잡겠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론 계속 더 부작용만 많이 일어나고 결국 그것은 능력 부족이라는 이야기인데 이러한 상황이 벌어졌으면 원점에 돌아가 검토를 해야 할 텐데, 어떤 측면에서 보면 자꾸 오기로 하는 것 같은 생각도 들고 그런 점에서 걱정이 좀...

◎ 사회/김어준>
그렇다면 역사 속에 성공한 여러 가지 개혁들의 기준으로 볼 때 지금 현 정부가 잘 하고 있는 부분을 찾아보자면 어떤 부분이 있습니까?

◑이덕일 소장>
잘한 부분은 딱 현 정권뿐만 아니라 과거 군사문화, 권위주의 문화 이런 것이 상당히 획일화된 사회에 살 수 있었는데, 이런 것들을 다원화 하려고 시도한다는 부분이나 과거에는 검찰권이나 이런 것들이 전부 현 정권에 예속돼 있었는데, 그러한 부분들을 상당부분 독립시켜 줬다거나 하는 점들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죠.



문제는 기존 권위를 해체하는데 해체에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는데 있어야 하는 건데 당신들이 만들려는 새로운 질서가 뭐냐 그것이 안 보이다 보니 자꾸 사회가 혼란스러운 것이다.

◎ 사회/김어준>
해체하고, 기본 권위를 거부하고, 개혁하겠다는 말만 하지 실제로 어디로 가는지가 잘 보이지 않는다....



◑이덕일 소장>
그렇죠. 해체에만 목적이 있을 땐 그것은 파괴 행위에 지나지 않거든요. 그런데 새로운 건설을 위한 해체 일 때는 우리가 낡은 건물을 부수고 새로운 좋은 건물을 지었을 때는 그것이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인데, 중국의 문화 혁명 같이 해체로서 끝나면 그야말로 역사의 퇴보가 되는 것이죠.

◎ 사회/김어준>
의자왕의 개혁은 왜 실패 했는가라는 소제목이 있는데, 이 부분을 좀 소개해 주십시오.



◑이덕일 소장>
의자왕도 마찬가지로 김춘추와 비교해보면 김춘추는 삼국 통일이란 아젠다를 제시해서 그 쪽으로 끌고 갔는데, 의자왕은 목적이 내부에 왕권을 가로막는 내부 호족 세력들 기득권 세력들하고 싸우는 데만 초점이 맞춰서 있다 보니 결국은 백제 사회자체를 새로운 사회로 이끌어 가는데 실패했기 때문에 나라까지 망하게 된 것입니다.

◎ 사회/김어준>
기득권 세력과 싸우고 기득권이 누리고 있던 부당한 권리를 뺏어내는 것 까지는 했는데..



◑이덕일 소장>
뺏는 자리는 백제의 좌평이라는 자리가 있는데 최고 관직인데 그 자리를 수십 명의 자리의 자리로 늘려서 자기 아들들한테 맡겨 버린 것이죠. 이런 식으로 하다보니 많은 반발을 낳고 실패를 하게 된 것입니다.

◎ 사회/김어준>
기득권하고 싸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이군요.



◑이덕일 소장>
그렇죠, 새로운 질서를 창출해 내야죠.



▶진행:김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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