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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7월 14일 탈취한 무기로 무장한 프랑스인들은 절대왕정과 앙샹레짐(낡은 체제)의 상징인 바스티유 감옥을 파괴했다. 자유와 평등과 박애의 이념을 기치로 불붙은 프랑스 혁명의 불길은 나라 안팎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갔다.
구체제의 주인공인 국왕 루이 16세는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려 하고 있었다. 주변 제국들도 불길이 옮겨 붙을까봐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이들의 관심사는 자신들을 위협하는 위험한 사상을 가진 프랑스 혁명정부를 전복하는 것이었다.
프랑스 안에서는 국왕 루이16세(LouisXVI, 1754-1793)와 왕비 마리 앙뚜아네트(Marie Antoinette, 1755~1793)가 망명귀족들과 은밀히 연락을 취하면서 주변제국들을 설득해 혁명정부를 분쇄하도록 해 자신들의 절대왕권을 부활시키려는 반동 모의를 하고 있었다.
국외에서는 1791년 8월 21일 오스트리아 황제(레오폴드 2세)와 프로이센 국왕이 피르니츠에서 “두 나라는 상호의견의 일치를 보아 무력으로 신속하게 공격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피르니츠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초기 혁명 권력의 주도권을 잡은 지롱드당은 전쟁을 통하여 내부분열을 제어하고 인민의 권리를 확장하며 국왕의 정체를 폭로하여 왕권을 박탈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한다는 명분으로 1792년 4월 20일 오스트리아 제국에 선전포고를 하였다.
하지만 프랑스군을 지휘하는 장군과 일부 장교들은 귀족출신으로 혁명에 복무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궁정과 내통하여 혁명권력의 전복을 기대하고 있었다. 왕비 마리 앙뚜아네트는 이들로부터 입수한 혁명정부군의 작전계획을 적군에게 건네주고 있었다.
이 같은 장군들의 반혁명 음모와 궁정의 음모가 폭로되면서 1792년 8월 10일 다시 인민봉기가 일어나 왕궁을 접수하고 국왕 루이16세와 그 일가를 템플감옥에 유폐시키고 왕권을 정지시켰다. 그리고 9월 22일 공화국이 선포하였다. 결국 왕과 왕비는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프랑스 혁명정부는 오스트리아, 영국, 네덜란드 등과 전쟁을 시작했다. 프랑스군은 패전을 거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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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근무 기자 |
| 1792년 8월 10일 인민봉기와 루이 16세의 처형 | 귀족 출신 장교들은 대부분 망명해 버리고 부대와 요새에는 무기와 장비도 없었다. 혁명정부는 급기야 ‘창으로 싸우자’는 결의를 하였을 정도이다. 영국에서 수입하던 강철공급이 끊기니 무기제조가 어려웠다. 영국·스웨덴에서 수입하던 구리가 끊겨 대포도 제조가 어려워 사원의 종을 녹여 쓰기도 하였다. 화약원료인 질산칼륨은 영국 식민지 인도에서 수입하고 있었는데 해상을 영국해군이 장악하고 있어 수급이 불가능했다.
이렇듯 위급한 시기에 수학자 몽주(Gaspard Monge, 1746~1818)가 새 제철방법을 개발하였다. 그와 여러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프랑스 혁명군은 강철을 생산할 수 있게 됐고 총검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몽주는 또 마구간, 움집, 화장실바닥 등에서 질산칼륨도 정제하는데 성공했다. 화약도 제조가 가능해져 조국 프랑스를 구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몽주는 프랑스 중동부 시골 읍 본(Beaune)에서 칼날을 세워주는 행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재능이 드러나 14살 때 설계도 없이 소화(消火) 펌프를 제작하고 측량기 등을 만들었다. 16살 때에는 본 읍의 지도를 정교하게 만든 능력을 인정받아 메지엘에 있는 귀족들이 입학하는 공병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몽주는 요새구축 때 필요로 하는 정밀한 계측산술에 기하학적 방법을 도입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3차원 물체를 2차원 평면에 적절히 표현하는 방법으로 현재에는 도학 또는 화법기하학(3차원 입체를 몇 개의 평면으로 투영하여 표현하는 기하학)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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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근무기자 |
| 몽주와 화법기하를 이용한 평면도 정면도 우측면도 | 프랑스 군에서 채택하여 일급비밀로 분류되어 오랫동안 공개되지 않았다. 몽주가 창안한 이런 병술학은 그 후 프랑스 포병부대가 빠른 시간에 성장하여 유럽을 장악할 수 있도록 하는 토양을 제공했다. 몽주는 혁명과정에는 해군성 장관으로 임명됐다.
그리고 패전만 거듭하던 혁명전쟁을 역전시켰고 승리의 계기를 제공하였다. 귀족출신 장교들의 망명 등으로 인한 부족한 군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에꼴 뽈리떼끄니끄(l’Ecole Polytechnique)를 1795년 설립하는 것도 주도했다. 그리고 이 학교에서 수학 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에꼴 뽈리떼끄니끄는 현재도 프랑스 군의 고급기술인력 배출의 요람이다.
이 학교는 유능한 기하학자들을 많이 배출했는데, 그들 가운데 미분기하학 분야의 거장 뒤뺑(Charles Dupin, 1784-1873)과 사영기하학 분야에 인재 뽕슬레(Jean Vivtor Poncelert,1788-1867)도 있다. 몽주는 프랑스혁명 과정에서 화법기하학을 개발해 진지구축과 포대배치 등에 이용하였다. 그리고 대포와 화약 제조법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리고 기술학교를 세워 많은 인재를 배출해냈다. 이렇게 그는 수학적 능력을 가진 몸과 마음을 던져 프랑스 혁명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기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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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독재정권 시절 민주화운동을 해왔으며 대구사회운동연구소 이사, 포항참여자치연구소 이사ㆍ자치분권포항연대 대표를 거쳐 현재 자치분권전국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 이근무 위덕대학교 정보통신공학부 교수, 자치분권전국연대 공동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