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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명렬 군사평론가. | 최근 병역기피를 목적으로 국적 포기의 탈출자(?)들이 속출하여 비난의 여론이 빗발 친 적이 있다.
물론 그 동기 면에서 변명의 여지없이 지탄받아 마땅하지만, 감정적 질책의 목소리만 일방적으로 높일 것이 아니라 이를 기화로 관계 당국으로서도 병역제도개선 군대문화개혁 등 책임 있는 연구와 개선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사나이로 태어나서!-”라 큰 소리들은 치지만, 막상 입영 통지서를 받고서 좋아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군 입대는 분명 우리 젊은이들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걱정거리 중의 하나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는데 평생 생애계획 준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총기 번뜩이는 한창 나이에 2년 가까운 세월을 사회와 단절되어 병영에서 보내야 하니 고민거리일 수밖에 없다.“조국과 민족을 위하여!”라 아름답게 의미를 부여하지만, 내심 큰 부담임을 어찌하랴!
군대는 본질적으로 전투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그 기능적 특성상 죽음의 한계정세를 넘나들 정도의 고된 훈련과 엄격한 기율이 뒤따르는 특수한 집단이다. 이에 대해서는 우리 젊은이들도 충분히 이해하고 또 그런 육체적 어려움은 어떻게든 용감히 인내하며 극복 해낼 수 있다.
이런 면이 두려운 게 아니고 우리 군은 아직도 사병 인권무시, 부하에 대한 인격적 모멸, 상관을 위해 군이 존재하는 것처럼 되어있는 불합리한 권위주의 등 군대 문화적 측면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는데 이를 어떻게 참고 견뎌내야 할 지에 대해서 걱정이 태산같아 지래 겁먹게 된다.
물론 그동안 많은 노력을 쏟아 우리 군대가 물리적 환경이나 급식, 내무생활 분위기 등 여러 면에서 아주 좋아진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감옥소 안에서 밥그릇 수를 기준으로 극도의 공포감을 조성하여 신참을 못살게 굴러 질서를 유지하던 독재시대에 군 병영 안에서도 고참병의 횡포와 구타가 비일비재했던 옛날과 비교해서 좋아졌다는 말이지, 민주주의가 보편화된 열린 시대를 살아온 병사들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인명경시, 인권무시. 간부위주, 불필요한 작업, 민족의식 없음 등 구 일본군대와 독재시대의 극단적 권위주의적 문화가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극도로 공포한다.
“국민을 위한 국민의 군대”라 했는데 국민인 병사들은 천덕꾸러기 취급되어 자부심과 보람을 갖지 못하고 죽었다 꾹 참으며 “제대 날자만 기다린다” 고들 하니 세상에 그토록 큰 자기 희생을 감수하고 용약 입대한 사람들인데 그런 푸대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절대로 그들의 국적포기 탈출 행위를 옹호하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조국을 배반한 비애국자라 손가락질하여 궁지에 몰아 비난만 퍼부을 것이 아니라, 오죽하면 국적까지 포기하겠는가? 의 부분도 생각해 봐야하지 않겠는가?
첫째 무엇보다 육체적으로는 무진 힘들고 고생되지만 정신적으로는 자부심과 보람, 여유와 나름대로의 기쁨이 있는 군대로 새롭게 태어나도록 군대를 개혁해야한다.“군대”하면 떠오르는 국민적 인식과 이미지를 확 바꾸어 군대가 평화롭게 친근하게 느껴지도록 해야한다.
둘째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특수한 상황에서...” 운운 하면서 무조건 병역의무 기간 단축을 반대하는 시대착오적인 고식적 발상의 한계를 뛰어넘어 첨단 정밀화 과학화 되어가고 있는 무기를 다루고 운영할 수 있는 전문성 확보 그리고 국가 인적자원 전체의 질적 우수성 계발 등 국가 총력의 입장에서 국방력을 고려하여 군 복무기간을 검토, 비교적 단순 임무인 전투병은 대폭 단축하고 사회와 연계 기술병과의 기능 수준을 고도화 배양하는 체제로 변환하는 등 병역제도 전반을 혁신하여 불필요한 부담과 낭비적 요소를 과감히 해소해야한다.
셋째 병역의무의 공정성을 신뢰할 수 있어야한다. 법적 의무로서 군 복무를 강제 할 수 있는 정당성은 집행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보장됨에서 비롯된다 할 수 있다. 징집된 병사들은 국가방위를 위해 열심히 복무하고 있는데 요리조리 힘써 면제받은 자들은 공백기 없이 학업을 계속하거나 직장을 선점하여 경쟁에서 앞서는 불공정이 연출된다면 누가 군에 가려하겠는가?
이는 참으로 불건전 불공평한 후진사회의 모습이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너무나 부끄러운 후진 사회에서 살아왔다. 그동안 우리사회를 이끌어온 이른바 지도층이라는 분들의 자제들이 일반 국민들에 비해 현역 복무 비율이 현격히 낮다는 것은 여러 자료로서 입증된 사실이다.
그들의 선대들이 일제 강점기와 암흑의 독재시절을 기회주의적으로 잘 이용하여 영달을 누리며 살아온 방식 그대로 힘든 의무는 약자들에게 떠 밀치고 양지만을 찾아 특혜를 누리며 사회의 주류로 대물림 받아 성장 특권을 누리고 있는 모습을 곳곳에서 본다.
김대업 씨가 이회창 전 총재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을 용감히 폭로했지만, 비리여부의 진상을 밝히려는 본질 문제는 실종되어버리고 다른 곁가지를 법적으로 걸어 힘없는 그가 외롭게 시달리며 극우 족벌 선동지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음을 보며 우리사회 현실의 상징적 모습이라는 생각에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오죽하면 6.25때 최전방에서 적의 총탄에 맞아 스러지는 병사들이 “나는 빽이 없어서 이렇게 억울하게 죽노라”는 한에 맺혀 “빽!!”소리를 지르며 전사했다는 말이 공공연히 전 해 내려왔겠는가.
비리가 불가한 시스템 구축
지금은 우리 군도 많이 정상화되어 그렇지 않지만, 과거에는 군과 연관되어 발생하는 부조리의 이면을 깊이 파고들면 그 부대에 파견 나와 있는 기무사요원이 어떤 형태로든 개입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그들의 주 임무는 보안 방첩이지만, “제사에는 뜻이 없고 제삿밥에만 뜻이 있다”는 말처럼 주로 부대내의 비리 탐색에 열내어 활동하기 때문에 사실상 이들의 묵인 혹은 동조 없이는 어떤 비리도 불가능했다.
역으로 기무사 요원만 끼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말이 된다. 그들은 다른 어떤 기관 어느 누구로부터도 견제 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것이 문제였다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하지 않았던가.
기무사가 그토록 막강한 특권을 누리게 된 것은 바로 박정희가 5·16군사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탈취한 이래 또 다른 군사정변의 가능성을 두려워하여 군을 완전히 정권의 시녀로 만들어 통제 장악 감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무사를 활용했기 때문에 생긴 병폐다.
주제와 다른 이야기지만 그런 시각으로 볼 때 기무사가 주동하여 만든 12.12 군사반란과 5.18광주학살 그리고 5공 독재의 역사적 원흉은 바로 박정희라 할 수 있다.
누구로부터도 견제 제지받지 않은 절대 권한을 가진 기무사요원이 징병 검사 담당 군 병원에 지원 나가 있으니 이 얼마나 편리하겠는가? 극성스런 엄마들이 단방효과를 낼 수 있는 그 좋은 길을 그냥 놔둘 리 있겠는가?
그렇다고 기무사령부가 병역비리의 온상이라는 이야기는 전혀 아니다. 징병 신체검사를 하는 병원에 나가 있는 기무사 요원이 개인적으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부조리에 개입이 가능할 수 있게 되어 있는 제도상의 허점을 지적함이다.
기무사령부 고급간부도 피치 못할 사람으로부터 부탁 받아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딱한 입장에 처하면 별수 없이 관련부대에 나가있는 부대원에게 아주 조심스레 부탁할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지난 1998~1999년 군 검찰에 의한 대대적 병역비리 수사 과정에서 기무사 고급 간부에 의한 위와 같은 유의 부탁 내용을 포착, 이를 파헤치려다가 도리어 그 검찰관이 뒷조사를 당하여 곤혹을 치른 적이 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코 걸고 귀 걸어 뒤집어씌우면 누구도 별수 없이 당하게 마련인 그들의 위력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기무사와 군 검찰이 발전적 상호 견제와 협조로 물셀 틈 없는 제재기능을 발휘, 병역비리는 어떤 방법으로도 불가능 투명하다고 국민들이 신뢰 할 수 있도록 제도적 조치를 강구 하여야한다. 이런 면에서 사법개혁 추진위원회에서 제안하고 있는 군 검찰의 독립성은 반드시 관철 되어야할 것이다.
병역문제 때문에 조국을 등지는 불행한 사람들이 나오지 않도록 이 기회에 병역의무 이행의 투명성은 물론 재미있고 유익한 군대, 부담이 크지 않은 복무기간 등 전반적인 개선 개혁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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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명렬 군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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