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한탄강사랑
2003/10/11(토)
수몰민의 애환을 담은 유치마을(전남 장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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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29 11:55


 [클릭이사람] (246) 수몰지역 앵글에 담는 마을사진작가 마동욱


한번 들으면 머릿속에 콕 박히는 마동욱(45)이라는 이름 앞에는 마을사진가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
라 붙는다. 혹시 발음을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어 사진작가가 아니냐는 물음에 그는 사진작가도
사진가도 아닌 ‘마을사진가’라고 또박 또박 힘주어 말한다.

튀는 이름 앞에 튀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주인공이라서 그럴까. 그가 하는 일 또한 이 세상 누
구 못지않게 튄다. 상업사진이 아닌 마을사진에 미쳐 살다 보니 벌써 십 수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
다며 밝게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

남녘 끝자락 전남 장흥군 장흥읍 건산리 720-149 단칸 월세방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중2 딸 그리
고 초등학교 2학년 아들 등 4식구가 살고 있는 그를 보면 다른 사람에게서 접할 수 없는 많은 것
을 느끼게 한다.

아무리 열심히 생업에 매달려도 먹고살기 힘든 요즘 세상에 돈 되지 않는 마을사진에 푹 빠져 지
내는 그를 만나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마음속을 파헤쳐 보고 싶었다.

호기심을 안고 이른 새벽 서둘러 집을 나와 06시05분에 서울역을 출발하는 호남선 무궁화호 열차
에 몸을 싣고 4시간여 만에 광주에 도착했다.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영산포를 거쳐 월출산 천관산 등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자연경관을 감상하
는 삼매경에 취하다 보니 어느덧 장흥. 대기하고 있던 택시를 타고 구수한 사투리가 물씬 묻어나
는 남녘 장흥 바닷가를 찾아가 그를 만나보았다.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하는 아름다운 어촌마을. 매서운 바닷바람에 눈발까지 날리는 늦은 오후 자
그마한 어촌 마을 포구의 날씨는 예상보다 차가웠다. 그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장작불 석쇠위에 석
화를 올려놓고 취재팀을 기다리고 있다가 눈이 마주치자 벌떡 일어나 반갑게 맞아주었다.  

돈 안 되는 마을사진을 찍는 남편대신 생업전선에 나서 분식점을 하는 아내에게 미안하고 안쓰러
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어보려는 심산으로 그는 점심때마다 식당에서 배달을 하는 ‘배달맨’이 된
다.

그는 점심 무렵 2~3시간 동안 아내가 운영하는 분식점에서 배달을 해주고 나머지 시간은 좋아하
는 마을사진 찍고 지난 10월 오픈한 자신의 홈페이지 관리를 한다. 그러다 보면 언제나 하루는 너
무 너무 짧고 할일은 태산같이 많다.  

홈페이지 이름은 ‘아! 물에 잠긴 내 고향’  유치마을 닷컴(www.uchimaul.com).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바로 그 탐진댐이 들어서는 바람에 수몰대상 마을이 된 장흥군 유치면 이름을 딴 홈페이지라
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역시 돈 안 되는 일이기는 마찬가지다. 홈페이지 제작하고 컴퓨터 사고 장비 구입하느라 거금 1
천만원을 쏟아 부어서 가뜩이나 힘든 상황에서 더욱 형편이 어려워졌단다.

때로는 가장이라는 책임감 때문에 생업전선에 뛰어 들기도 했지만 언제나 마음은 콩밭에 가 있었
다. 그러다 보니 다른 일을 하면서도 마을 사진을 찍는 카메라만큼은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런 그
에게 언제부턴가 마을사진가라는 별칭이 바늘에 실처럼 따라다녔다.


고향 마을 사진에서 수몰지역사진에 이르기까지 88년부터 15년째 돈 안 되는 사진에 매달려 왔다
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는 강한 자부심을 느끼는 듯 했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역마살이 끼어도
단단히 낀 사람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어쩌다가 이토록 특이한 이력의 사진맨이 되었을
까 그것이 궁금했다.

그의 전직은 의외로 공무원. 79년부터 서울 구치소 교도관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어려서 못한 공부가 하고 싶어 82년에 공무원직을 그만두고 나왔다.

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86년 소방관시험에 응시, 합격하여 다시 공무원이 되었다. 서울 중
부소방서 소방관으로 있으면서 홍보사진을 찍었다. 그때만 해도 마을사진이 아닌 화재현장 사진
을 찍고 싶었다.

그러다가 장흥에 내려가 고향사진을 찍고 싶어서 자원하여 운 좋게 88년 광주 소방서로 발령받았
다. 그때부터 주말이면 장흥에 달려가 고향마을 사진을 찍었다. 마을사진가로 첫발을 내딛는 순간
이었다.

그러나 역마살을 타고 났는지 잘 다니던 소방관직을 90년에 돌연 그만두고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가 7급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한다. 현직 공무원이 현직을 그만두고 다시 공무원 시험에 도전한
다는 것이 조금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튼 그는 6개월을 집중공부 했으나 가능성이 없다고 보
고 그 이후로 사진에만 전념했다.


사진학원에 등록하여 사진이론을 본격적으로 배운 후 바로 그 학원에서 사진 강사 생활을 몇 개
월  했다. 그러다가 충무로에서 프리랜서로 결혼사진과 상업사진을 했다. 그러면서도 서울에서 장
흥까지 다니면서 마을 사진을 계속 찍었다.

92년 4월 장흥군 농촌마을을 찍었던 419개 마을사진을 중심으로 첫 사진전을 장흥문화원에서 2주
일간 열었다. 그리고 그해 7월에 경기도 부천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언론에 스
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사진에 완전히 빠졌다. 마을사진 전문가로 소개 되면서 빼도 박도 못하게
된 것이다.

93년 서울 양천구에서 친구와 함께 대형 스튜디오를 개업하여 운영하다가 95년말 IMF때  다 말아
먹고 빈털터리가 되어 96년초 고향 장흥에 내려왔다.  

줄곧 마을사진을 찍으면서 꾸준히 전시회를 열었다. 장흥군 마을사진을 시작으로 유치면에 탐진
댐 이야기가 나오고 96년 댐이 본격화되면서 그는 더욱 바빠졌다.

수몰지역 마을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댐이 들어서면 사라져 없어질 마을사진 찍고, 댐 건설 반대
하고 시위하는 현장도 빼놓지 않고 찍었다. 그러면서 댐을 반대하는 의미에서 97년 10월 ‘아! 물
에 잠길 내 고향’ 사진집을 냈다.  


댐으로 사라져 없어지는 것을 담고 싶어 마을사진을 찍으면서 환경에도 눈을 떴다. 현재 탐진댐
공정은 90% 정도. 내년 10월이면 물을 채운다. 수몰 대상 19개 마을 주민 2400여명중 2000명 정도
는 이미 고향을 떠나 뿔뿔이 흩어졌고, 나머지 400명은 유치면 상류 비 수몰지역으로 갔다.

97년 10월 서울에서 사진집 출판기념회와 전시회를 연 그는 11월에 미국 시카고로 날아가 시골 농
촌마을, 우리문화 전통사진 등 한국을 알리는 사진 45점을 가지고 1주일씩 5개 지역을 돌면서 한
달간 초청 전시회를 했다.

그때 교포들의 호응은 물론 현지 언론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았다. 미국 초청전에서 사진도
20여점이나 팔렸다. 국내외를 통 털어서 전시장에 걸린 사진이 팔린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돈 안 되는 마을사진을 고집하는 이유는 언론 때문이란다. 방송, 신문 등에서 심심하면 한 번씩 찾
아와 자문도 받고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자료도 의뢰해 오고 인터뷰도 하는 등 그를 가만 놔두지
않는 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촬영한 사진이 몇 커트냐는 인터뷰 물음에 한 2만컷 찍었다고 대답한 것이 기사화 되고
나면  3만컷 찍었다고 부풀려서 나온다. 그러면 진짜 그만큼 찍으려고 더 노력하고 그러다 보니 지
금까지 왔다.

지금은 마을사진만 안 찍으면 식당운영으로 먹고 살수 있는데 사진을 찍기 때문에 계속 먹고 사
는 것까지 힘들어진다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사진을 놓을 수가 없
다. 댐 공정도 당초예상보다 늦어지니까 계속 사진 찍으러 가게 되고 계속 꺼리가 생겼다.

마을사진을 찍는 중에 사람을 많이 알게 되면서 사람들 동영상까지 담다 보니까 더 많은 돈이 들
어가고 더 시간이 많이 빼앗긴다. 그렇게 찍은 사진이 현재 10만여컷. 모두 마을사진으로 그 중에
서 90%가 유치면과 댐 주변지역 사진이다. 헬기, 경비행기 등을 타고 하늘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면
서 항공사진도 여러번 찍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전국에 1200개의 댐이 있는데 개인은 고사하고 정부차원에서도 이런 작업을
한 경우가 그 말고 없다. 댐 사진을 가지고 책을 만든 것도 그가 처음이다. 책에는 유치면 수몰지
역 사진이 900여컷 들어있다.

그는 이제 몰라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장흥군에서 명물이 되었다. 그의 고향은 정확히 장흥군
안양면 학송리.

중고등학교는 검정고시로 마쳤다. 교도관 시험 합격하고 나서 고입검정고시를 83년에 합격하고 8
4년에 대입 검정고시 합격하고 85년에 방송대 법학과에 들어갔다. 법학과에 다니다 말고, 다시 방
송대 영어과에 들어갔으나 또 다니다 말고 강진 성화대 만화사진과에 들어가, 어렵게 졸업했다.

어렸을 때 어렵고 힘들고 가난해서 고향을 떠났지만 고향에 대한 애착이 남달리 강하다. 고향에
서 너무 힘들었지만 8순의 어머니가 고향에 계셔서 잊지 않고 다시 내려왔다.

탐진댐으로 수몰되는 유치마을을 생각하면 그는 마음이 아프다. 우리의 잃어버린 꿈과 추억을 살
리고 싶어서 사진을 했다. 장흥출신 서울 사람으로 마을사진가 마동욱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
로 명예는 얻었는데 가정경제는 계속 마이너스.

“우리 어머니 소원은 제발 제가 사진 안 찍는 것입니다. 좋은 직장 다 그만 두고 평생 돈 안 되는
사진만 찍고 있으니 그러실 만도 하지요”

남들은 다 돈벌고 다니는 데 그는 돈 안 되는 짓 하니까 가족들한테 미안하기 짝이 없단다. TV에
얼굴이 자주 나오면서도 돈을 못 버니까, 처음에는 TV에 나온다고 좋아하던 가족들도 이제는 별
반응이 없다.

그를 중심으로 TV 문학관 제작도 했다. KBS에서 방영한 신 TV 문학관 ‘나는 집으로 간다’의 주인
공이 바로 마동욱이다. 또한 탐진댐이 TV 다큐프로로 나갈 때마다 그가 다리 역할을 했다. 탐진
댐 이야기만 나오면 그가 단골로 나온다.                        

앞으로도 그는 마을사진 작업을 계속할 작정이다. 탐진댐에 완전히 물이 차고 나면 그때는 수몰마
을을 떠나서 각지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을 찾아내 계속 사진을 찍고 싶어 한다. 그리고 국내 최초
로 목포에서 런던까지 철길 여행을 마무리 하고 싶다.

목포에서 임진각까지 철도 도보 종단을 이미 2000년에 국내 최초로 마쳤다. 철로위를 6월 한 달간
걸어서 마쳤다. 사라지는 우리 것들에 대한 아쉬움에서, 그리고 경의선이 복원돼야 된다는 바람에
서 철로로만 목포에서 런던까지 갈수 없겠는가 생각하고 대장정을 강행했다.  

작년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페테르부르크까지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몸을 싣고 한달간 여행을
했다. 그러다가 불의의 사고로 아쉽게도 유럽까지 못가고 도중하차, 페테르부르크에서 돌아오고
말았다.

그래서 페테르부르크에서 유럽까지 못 다한 철로 여행을 끝내고 임진각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도 마치고 싶다. 그러나 북한 문제는 쉽지 않을 것이다.

실향민을 위해 이북에 들어가려고 여러 차례 통일부에 들어가서 시도해봤지만 아직도 풀리지 않
았다. 92년 이북마을 사진을 찍어오기 위해 시도했지만 통일부에서 승인을 해주지 않았다.

또 2001년 철도타고 북한 가려고 여러 경로로 시도해 봤지만 그것도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북
한은 아직까지도 개인이 가기에는 너무 힘든 땅이라고 그는 자신의 심경을 털어놓는다.

결혼식도 서울 야외 전시장에서 야외 전시회 하면서 했다. 고향사진 야외 전시회하면서 올린 야
외 결혼식이다.  

그가 여는 마을사진 전시회에는 고향사람들 뿐만 아니라 실향민들도 많이 온다. 두고 온 고향생
각 난다면서 전시회가 끝날 때까지 전시장을 떠나지 않고 날마다 울면서 사진을 들여다  보는 실
향민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하다고 털어놓는다.  

그의 사이트에는 지금 수몰지역 주변마을사진 400여컷과 동영상 20여 시간이 올라가 있다.

남은 인생도 그는 고향에서 살 작정이다. 앞으로 마을사진 3만여컷을 사이트에 올리고 3년에 걸쳐
서 촬영해 놓은 동영상도 계속 올릴 것이다. 댐으로 수몰되는 고향 마을사진을 찍으면서 보낸 세
월이 자그마치 15년.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사회라고들 하지만 그는 세상을 거꾸로 사는 사람이었다. 돈 되지 않는 마
을사진가로 활동하는 그야말로 사라져가는 우리 것에 대한 소중함을 알리고 일깨워주는 진정한
고향 지킴이였다.

다른 내용은 책에서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이전  다음>>


<피플코리아/김명수기자 www.people365.pe.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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