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최종철
2004/1/10(토)
"탐진댐 건설의 실체분석"[전남 장흥군 소재]  

◎ No, 646
◎ 이름 : 탐진댐수몰[한탄강네트워크}
◎ 2004/1/9(금) 20:23 (MSIE6.0) 61.80.94.101 1024x768
◎ 조회: 18 회

                        " 탐진댐 건설의 실체분석"[전남 장흥군 소재]  

2003년에 완공된다는 댐건설이 다시 2004년으로 연기가 되었다.
댐 건설이 연기되다보니 한국수자원공사에서도 댐 건설 사업비의
추가 증가분이 얼마나 늘어나게 될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댐 건설의 공사기간을 정확히 지키지 못하는 것은 건설계획 당시 댐이 들어서는
지역의 지질이나 토양 그리고 강수량 등 기초 자료의 부족과 수몰 지역과
비 수몰 지역의 보상금액 조차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기초 자료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댐 건설 초기에 억지로 짜 맞춘 예상된 보상금액이 댐을 건설하는 과정에서기하급수로
불어나고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 같던 댐 건설이 곳곳에서 여러 가지 반대에 부딛혀
댐 공사기간이 고물 줄처럼 늘어나고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게 되었다.

댐 건설 초기의 예시된 공사금액은 지난 1996년 댐 건설 계획 공고 시 2천 2백 억 원이었는데
2003년 12월 현재 탐진 댐 건설 총 공사비는 6천600억원으로 늘어났으며 그중 보상비는
수몰지역 1천 960억원과 비 수몰지역의 간접 보상금액 199억원이다.

수몰지역에 살았던 697가구의 주민이 2003년 12월 현재 모두 수몰지역에서
떠나야함에도 불구하고 아직 10여 가구는 보상에 불만이 있거나 이미 보상을 받고
떠난 사람들과 보상금액의 형평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떠나지 못하고 있다.

전남 장흥군 유치면 수몰주민들은 고향을 쫓겨 가는 마당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보상을
받기를 바랐고 일부 주민들은 느닷없이 국화와 장미, 카네이션 같은 화훼를 다른 지역의
댐 건설지(전북 용담댐)에서 종자를 가져와 수몰지역에 뿌렸다.

또한 댐 건설 고시가 떨어지기 전인 지난 1996년 이전부터 이미 유치마을엔 두충나무와
은행나무 같은 약재나무와 그리고 배나무와 감나무 등 과실수가 수몰지역의 논과 밭에
많이 심어졌다.

벼농사와 고추나 마늘과 같은 일년생 채소보다 비교 할 수 없이 많은 실농 보상비는
수몰민을 충분히 유혹하고 남았다. 화훼와 양식업, 버섯류 같은 대단위 사업의
보상금액은 엄청난 차이가 있어 이미 예상된 일이었다.

초기의 댐 건설 보상금액과 건설비용이 수 십 배로 불어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댐을 찬성하는 쪽과 댐으로 이익을 얻게 되는 집단들은 너나없이 금전적 보상을 요구했으며
더 많은 보상을 받기위해 다른 지역의 댐 을 방문하여 사람들을 만나면서 머리를 짜내었고
댐을 건설하는 수자원공사와 정부는 그러한 일들을 충분히 알고 있었음에도 제제를 하지 않았다.

오직 정부에서는 댐을 건설하여야 한다는 대 명제아래 무조건 밀어붙이기 행정으로 일관 했다.
그 결과 댐 하나 건설하는데 소용되는 경비는 엄청나게 불어났던 것이다.

전남 장흥군 유치면 덕산리 돈지 마을 양윤승 할머니는 3년 전에 교통사고로 할아버지를 잃었다.

할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아들과 함께 마을로 들어서는 길목에 많은 돈을 들어 하우스를 짓고
그곳에 느타리버섯을 재배하였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이전의 일들이 제대로
정리되지 못해 느타리 버섯하우스가 보상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또한 지난 96년에 논에 만들었던 가물치 양어장이 불법으로 판정이 되어 양어장도
보상을 받을 수 없어 장흥읍에 할머니가 살아갈 집을 이미 마련했음에도 충분한 보상을
요구하며 고향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유치면 송정리 주암마을 문기성씨는 40대의 젊은 사람이다.
20여 가구의 사람들이 모두 고향을 떠나고 없지만 집 앞에 농협에서 빚을 내어 지었던
느타리버섯 하우스가 보상이 되지 않아 보상이 되는 그 날까지 고향을 떠나지 않겠다고 한다.

유치면 용문리 지주상씨는 지난 96도에 장평에서 이곳으로 이사를 와 대지를
마련하고 콘테이너를 들여놓고  가족과 함께 살았다.

그러나 탐진 댐 전남도 지원 사업소에서는 지난 97년 1월에 콘테이너가 불법 건물이라며
유치면사무소에서 철거 명령을 내렸기에 건물로 인정 할 수 없다며 이주보상비를
주지 않아 떠날 수 없다고 한다.

지주상씨 말에 따르면 “97년도에 전남도 지원사업소에서 감정 평가사와 감정을 하면서
분명히 지목이 대지로 되어있는데도 대지로 감정을 하지 않았기에 잘못된 감정 평가라며
행정소송을 하여 보상을 받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치면 용문리 박임규 이장은 용문리 비 수몰지역에 이미 고향에서 떠난 친구들과
함께 5가구가 집단 이주단지를 만들어 살기로 했지만 아직 이주단지가 조성되지
못해 집을 짓지 못해 이사를 가지 못하고 있다.
그는 지난 설에 고향에서 마지막 설을 쇤다고 했으며 추석에도 마지막 이라고 했지만
또다시 다가오는 설을 고향에서 쇠게 될 것 같다.

유치면 용문리 송두석씨 어머님은 장흥에 살고 있는 아들집 보다는 그래도 평생 살아 온
고향집이 좋다며 고향에 물이 차오를 때까지 고향에 남고 싶다고 한다.

유치면 용문리 김만수씨댁 그는 광주로 가족들과 함께 이미 이사를 갔다.
그러나 고향 농토에 재배했던 표고버섯이 아직도 자라고 있어 물이 차오를 때까지 표고버섯을
수확하고 싶다고 한다.
표고버섯 이전 보상비는 나왔지만 지금 표고를 옮기게 되면 표고가 나오지 않아 고향을
오가며 표고를 수확하겠다며 집을 철거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유치면 용문리 장진금씨는 수몰지역에서 가장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다.
함께 한마을에 살았던 사람들이 대부분 보상을 받고 고향을 떠났지만 장진금씨는
자신이 받았던 보상금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며 물이 차오르면 아예 물속에 빠져
죽겠다며 공탁으로 처리된 보상금을 수령하지 않고 있다.

그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5가구가 똑같이 배나무를 심었는데 자신만 배나무를 보상받지
못했다며 보상이 형평성 없게 지급되어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또한 자신의 허락도 없이 도로공사를 하면서 자신의 땅을 수용했다면서 보상에 많은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그는 지난 96년도 8월에 건강이 좋지 못해 평생 살아왔던 고향에서 병원에 가기위해
아들집에 단 4개월 동안 퇴거를 해갔는데 그것이 이주 보상비조차도 받을 수 됐다는
것에 분노하고 있다.

또한 현재 이사를 가지 못하고 사람이 살고 있는 집에 수도를 끊어 물이 나오지 않아
집 앞 냇가에서 음식을 준비하거나 쌀을 씻으며 마실 물은 1.5km까지 경운기를
끌고 가서 떠다 먹는다고 한다.

이제 탐진 댐은 마무리 공사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수몰지역 대다수 2200여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정든 고향땅을 떠나 어디론가
흩어졌지만 오늘도 고향을 떠나지 못하고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 첫눈이 내리면서 날씨도 제법 추워졌다.
추워진 날씨만큼이나 아직 떠나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도 꽁꽁 얼어가고 있는 것 같다.

모든 보상을 위임 받은 전남도에서는 도민을 위해 최선을 다해 보상업무를 집행하였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직 보상이 마무리되지 못하고 자꾸만 불만을 제기하고 있는 수몰민이 있다.
금년 말이면 탐진댐 도지원 사업소는 보상 업무를 끝내고 전남도로 철수하며 모든 보상업무는
한국 수자원공사로 넘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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